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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天摩山) 견성암(見聖庵)

 

천마산 아래 견성암(見聖庵)을 찾았다. 남들은 견성암(見聖庵)을 먼저 찾고 다른 부수적인 것을 곁들여 방문하는데 나는 항상 먼저 묘역을 찾고 그 다음에 절이나 암자, 사당 등을 찾게 된다. 
이곳도 묘지답사로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풍양조씨 조상우 묘를 답사하려고 벼르다 찾은 곳이다. 묘지 답사를 마치고 견성암을 올라 불전에 초를 밝히고 스님하고 잠시 인사나누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풍양조씨 합동제단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풍양조씨시조 유적비도 둘러보고 왔다.
견성암(見聖庵)은 고려 중엽(1200년경)에 풍양조씨 후손들이 시조 조맹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초에 시중이었던 조맹이 동굴에 은거하면서 약사여래의 광명을 친히 보아 원불(願佛)로 삼아 왕건을 보좌하고 개국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견성(見聖)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나왔으며, 후손이 원당을 세워 약사여래를 공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독정(獨井)이라는 샘이 있는데 조맹이 수도 중에 이 물을 마셨다고 해서 유명하다. 여기서 독정마을, 독쟁이절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조맹이 도를 닦던 석굴에는 1975년에 세운 동상이 있는데 스님에게 여쭤보니 산신각에에 봉안된 영정을 토대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산신각은 약간 높은 언덕에 있는데 가는 중에 커다란 바위가 두쪽으로 갈라진 체 서있다. 스님께서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계셔서 여쭤보니 나더러 와서 나무를 보라신다. 나무가 희안하게 두 바위틈에 떠있듯이 서있다. 스님의 말씀이 없었으면 모르고 지나칠뻔한 괴이한 모습을 봤다. 뭔가 신비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스님께서 요사체 앞쪽의 절벽에 있던 나무들을 모두 제거하고 계셨는데... 이곳은 바람이 세서 절간이 바람에 노출되어 있어 보였다. 이런 곳은 나무를 더 식제하고 앞쪽을 막아야 하는데 그걸 없애고 계셨으니 잘 못 판단하신듯 보인다. 다른 처사께서 없애면 안된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모른 체 그자리를 떠났다. 그걸 없애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고 하시던데 그런 것은 하나의 징조로 여기고 그만두어야 하는데 다시 허리가 낫었으니 새로 작업을 하겠다고 하는 걸 보고 많은 걱정이 들었다.
견성암은 풍양조씨와 뗄 수 없는 암자로 보여지는데 일반인들에게도 기도처로 괜찮아 보였다. 특히 산신각과 조맹선생이 수도한 석굴, 약사전 약사불 등은 꼭 참배를 하고 와야할 곳 들이다.

 

 

천마산(天摩山) 견성암(見聖庵)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고려의 개국공신인 시중 조맹(趙孟)이 은거하여 도를 닦다가 약사여래를 친견하였다고 하여, 고려 중기에 후손들이 선조의 유적을 추모하기 위해서 창건하였다.
1860년(철종 11) 조맹의 후손이며 승려인 혜소(慧昭)가 법당 및 화양루(花兩樓)를 중수하였고, 1882년(고종 19)에 서린(瑞麟)이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화양루·요사채가 있으며, 화양루에는 「견성암중수기(見聖庵重修記)」·「견성암우화루기」·「견성암중수각부탱화신성기」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조맹이 홀로 수도할 때 마셨다 하여 독정(獨井)이라고 불리는 우물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샘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이 우물로 인해 독쟁이절 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절 부근에는 조맹이 기거했던 수양굴(修養窟)이 있고, 조씨 문중에서 이름 있는 사람이 죽으면 가지가 하나씩 말라 죽는다는 기념송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천마산(天摩山) 견성암(見聖庵)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원부리 205-3
관리자(연락처) 동래정씨사암공파

 

 

견성암(見聖庵) 연혁(沿革)
 
이곳은 후삼국 말 천마산(天摩山) 암굴(巖窟) 속에서 학문과 수양(修養)에 정진하던 '바우'란 현자(賢者)께서 사시던 곳이며 후일 고려(高麗)를 세운 태조(太祖) 왕건(王建)께서 그의 명성(名聲)을 듣고 친히 찾아가 경국지사(經國之士)를 논하던 중 출중(出衆)한 인품에 감동하여 한 번의 만남으로 즉석에서 장군(將軍)으로 봉(封)한 후 남정(南征)에 동참시켜 고려(高麗)를 세우자 고려(高麗) 개국공신(開國功臣) 문하시중(門下侍中)에 보하였으며 또 '맹(孟)' 이란 이름까지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분이 바로 풍양조씨(豐壤趙氏)의 시조(始祖) 이시다.
그 후 고려 중엽(AD 1200년경)에 후손들이 시조(始祖)를 기리기 위해 암굴 앞에 절을 세웠으나 그 년대는 정확치 않으며 대략 800여년 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절(寺刹)의 명칭을 견성암(見聖庵)이라 명명한 유래에 대하여는 ;조시중(趙侍中)께서 수도하시어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을 친견하였기 때문'이라는 설과 '고려태조(高麗太祖)께서 조시중(趙侍中)을 찾았음'에 기인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 이 절에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井)이 있으며 이 샘물은 조시중께서 홀로 마셨다 하여 독정(獨井)이라 부르며, 그래서 세인들은 이 절을 '독정사'라고도 하였는데 절 아래 마을은 오늘날까지도 독정이란 동명을 쓰고 있다.
견성암(見聖庵)은 국가로부터 800년 역사를 지닌 고찰(古刹)로 그 문화적(文化的) 가치가 인정되어 1962년 전통사찰(傳統寺刹)로 지정(指定)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경기 북부지역의 35개 전통사찰 중 유일(唯一)하게 어느 종파(宗派)에도 속하지 않은 사찰(寺刹)이기도 하다.<견성암유래 안내판을 기록하다>

 

▼ 천마산(天摩山) 견성암(見聖庵) 일주문.... 절의 크기에 비해 일주문은 상당히 크다.

▼ 천마산(天摩山) 견성암(見聖庵) 약사전...

▼ 천마산(天摩山) 견성암(見聖庵) 약사전... 

▼ 약사전에 모셔진 주불 약사불... 특이하게 산신이 모셔져 있다. 기록에 보니 이곳 주지 김지연스님께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산신각을 오르지 못하자 이를 위해 약사전에 모셨다고 되어있다. 스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 견성암(見聖庵) 대웅전... 

▼ 견성암(見聖庵) 대웅전 부처님...

▼ 견성암(見聖庵) 석굴 안내문

▼ 견성암(見聖庵) 석굴 전경

▼ 견성암(見聖庵) 석굴에 모셔진 풍양조씨 시조 조맹 상(像)

▼ 견성암(見聖庵) 산령각 오르는 길에 있는 바위와 나무....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린 고목의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견성암(見聖庵) 산령각

▼ 견성암(見聖庵) 산령각 안에 모셔진 산신... 산신의 모습은 풍양조씨 시조 조맹의 모습이라고 전해진다.

▼ 견성암(見聖庵) 산령각에서 바라본 요사체와 독정마을 입구

▼ 견성암(見聖庵) 전경

▼ 견성암(見聖庵) 요사체 독정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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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