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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
용문사에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나무를 보러 자주 가곤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곳을 찾는 주 목적이 산사를 오를 때 느껴지는 청량감이 좋고 은행나무 아래 전통찻집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맛이 너무 좋아 찾곤 한다. 여름철에는 오르면서 길가로 개울물을 인공으로 만들어 물소리가 너무 좋고 겨울에는 따뜻한 찻집에서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맛이 너무 좋다.
근자에 용문사를 찾았더니 대웅전 옆에 못보던 약사불이 커다랗게 조성되어 있었고 절간이 깨끗하게 바뀌어 있었다. 돈이 많이 들어오면 불사를 자꾸 하게 되어 본래의 느낌이 사라지게 되던데 용문사도 점차 그들을 따라가는 듯 해서 걱정도 된다.
용문사에서 관음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정지국사탑(부도)이 나오는데 그 길도 아기자기하게 여름이면 걷기 좋다. 그런데 여러번 갔지만 탑비는 못본것 같아 이번에는 문화재를 포스팅 하려고 탑비를 찾았는데 없어서 다시금 부도를 반대쪽으로 오르면서 봤더니 부도 아래쪽에 자그마한 비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정지국사 탑비였다. 관심이 없다면 찾기 힘든 비석이다. 정지국사탑을 여러번 찾았지만 탑비는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다. 탑비에 새겨진 글씨를 읽을 수도 없고 내용도 알 수 없어서 좀 더 가까이 가서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했더니 주위 cctv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여름철에 용문사를 오를 때는 물소리 곤충소리와 함께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도 귀를 기울여보면 느낄 수 있다. 용문사 탐방을 하나 추천한다면, 오를 때는 일주문을 통과해서 가고 내려올 때는 정지국사탑을 보고 오솔길을 따라 공원으로 내려오면 운치가 더없이 좋을 것이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 용문사에서 약 300m 떨어진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지국사(1324∼1395)의 행적 등을 기록한 것이다. 정지국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황해도 재령 출신이며 중국 연경에서 수학하였다. 조선 태조 4년에 입적하였는데 찬연한 사리가 많이 나와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탑과 비는 80m정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탑은 조안(祖眼) 등이 세운 것이며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4각이고 윗받침돌과 탑몸이 8각으로 되어 있어 전체적인 모습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기고, 북 모양의 가운데받침돌에는 장식없이 부드러운 곡선만 보인다. 탑몸에는 한쪽 면에만 형식적인 문짝 모양이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아래에 3단 받침이 있고, 처마 밑에는 모서리마다 서까래를 새겼다. 지붕돌 윗면에는 크게 두드러진 8각의 지붕선이 있고, 끝부분에는 꽃장식이 있는데 종래의 형태와는 달리 퇴화된 것이다. 꼭대기에는 연꽃 모양의 장식이 놓여 있다. 비는 작은 규모의 석비로 윗부분은 모서리를 양쪽 모두 접듯이 깎은 상태이고, 문자가 새겨진 주위에는 가는 선이 그어져 있다. 비문은 당시의 유명한 학자인 권근(權近)이 지었다. 처음에는 정지국사탑에서 20m 아래 자연석 바위에 세워 놓았는데, 빠져 나와 경내에 뒹굴고 있던 것을 1970년경 지금의 위치에 세웠다. <문화재청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보물 제531호 |
문화재명칭 |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 |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산99-6번지 용문사 |
관리자(연락처) | 용문사 |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 고려후기 원나라에서 나옹의 제자가 되어 벽봉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승려(1324~1395). 선승(禪僧). 성은 김씨(金氏). 호는 축원(竺源). 황해도 재령 출신. 아버지는 연(延),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장수산 현암사(懸菴寺)로 출가하여 바로 선(禪)을 닦다가, 뒤에 『능엄경(楞嚴經)』을 배워 깊은 뜻을 깨달았다. 1353년(공민왕 2) 무학(無學)과 함께 원나라로 가서 인도에서 온 지공(指空)을 찾았다. 그 때 고려에서 먼저 온 나옹(懶翁)이 지공의 인가를 받았으므로 두 사람은 함께 나옹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함께 여러 곳을 다니다가, 오대산의 벽봉(碧峯)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1356년 귀국하여 자취를 감추고 수행에만 힘썼다. 그는 항상 말이 적고 근엄하였으며, 깊은 산에 숨어 지낼 뿐 대중을 거느리고 법회를 여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천마산 적멸암(寂滅庵)에서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화장을 하자 많은 사리가 나왔으며, 제자 조안(祖眼) 등이 미지산(彌智山)용문사(龍門寺)에 부도와 비를 세웠고, 나라에서는 정지국사(正智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보물 531호)... 탑은 윗쪽에 있고 탑비는 아래쪽 50미터 부근에 있다.
▼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를 오르는 입구
▼ 정지국사탑 및 비 (正智國師塔 및 碑)를 오르면서 바라본 용문사
▼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 문화재 안내문
▼ 정지국사탑(正智國師塔)
▼ 정지국사탑(正智國師塔)에서 바라본 용문산관광지 입구...
▼ 정지국사탑(正智國師塔)
▼ 정지국사탑(正智國師塔) 측경
▼ 정지국사탑(正智國師塔)을 오르면서...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안내문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자연석 위에 별도의 좌대 없이 세웠다.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거의 온전하다.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측면에서 보면 조금 깨져 있다. 이곳이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음을 방증한다고나 할까...
▼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가까이 갈 수 없어 줌으로 당겨서 찍었는데 핸폰 카메라여서 썩 좋게 나오지는 않았다. 용문사 정지국사탑비 (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碑) 아래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그윽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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