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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사(普陀寺)

 

제가 자주 가는 작은 암자가 있다. 집 가까이 있어서 편하게 자주 드나드는 곳인데 이 작은 암자에 보물이 2점이나 있고 암반으로 이뤄져 기도발이 센 마애불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간절히 바라면 소원성취가 잘 되는 곳이다. 서울 세검정에 있는 옥천암 백불과 더불어 보타사 백불은 기도명당으로 유명한 곳인데 항시 개방되어 있어서 언제나 쉽게 접근하고 찾아 볼 수 있는 친근한 기도 도량 보타사(普陀寺)를 소개한다.

보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의 말사인 개운사(開雲寺)의 암자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길 60-46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대웅전 뒤편 암벽에 조각된 마애보살좌상의 조성시기로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1818호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普陀寺 金銅菩薩坐像), 보물 제1828호 서울 보타사 마애 보살좌상(普陀寺 磨崖菩薩坐像)이 있다. 
절간은 주위에 고려대학교가 있어서 학교 울타리에 둘러싸인 형태인데, 대지의 북측과 서측에 암반이 있고, 터는 옆으로는 좁고 앞뒤로 긴 형태이다. 
최근 보타사는 대대적인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마애불을 중심으로 앞쪽에 있던 대웅전을 새롭게 짓기 위해 준비 중이며, 이미 관음전은 준공을 했다. 또한 입구에서 3층 정도로 건물을 확장해 터를 넓혀 좀 더 기도처를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은 주지스님의 공력으로 대불사를 하고 있는데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磨崖菩薩坐像)-문화재청자료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磨崖菩薩坐像)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상이다. 이 불상은 1992년 서울 문화사학회가 정기 답사 때 발견한 것이며, 현재 보물 제1828호로 지정되었다.
마애 보살은 높이 5m, 폭 4.3m의 거대한 보살상으로, 대웅전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면을 ‘ㄱ’ 자 형태로 깊게 바위가 굴곡이 져 상이 유영하듯 보이는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넓은 어깨에 양감이 강조되어 신체가 당당한 모습이다. 머리는 보관을 쓰고, 보관은 높은 편으로 좌우가 관대가 돌출되고 관대에 결구된 보관 장식이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진 모습이다. 천의를 걸친 채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쪽으로 내리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 까지 올렸다.
얼굴은 갸름하며, 이마는 좁고 양미간에는 동그란 백호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활처럼 휘어진 눈썹 아래로는 눈꼬리를 약간 올려 사바세계를 향한 긴 눈을 표현하였으며, 콧방울에 힘이 들어간 코는 약간 매부리코로 실재감이 있다. 인중은 뚜렷하고 작은 입술은 살며시 다물어 옅은 미소를 풍기고 있다. 넓은 얼굴에 비해 이목구비는 작고 오밀조밀하게 표현하였다.
상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으로 좌우로 길게 뻗은 눈, 초승달 모양의 눈썹, 높게 솟은 콧등이 특징적이다. 원형의 백호와 함께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되었고 양쪽 모두 원형의 귀걸이 장식을 하고 있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보발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그 경계를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목구비를 단정하게 표현하였는데, 좁고 길게 늘어진 귀에는 둥근 귀걸이를 착용하였다. 목에는 삼도를 뚜렷하게 표현하였고 팔에는 둥근 무늬의 팔찌를, 목에는 물결무늬를 새겨 넣은 띠 모양의 목걸이를 부착하였다.
신체는 암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새겼으며 불신에는 천의를 걸쳤다. 양 어깨를 덮은 천의는 불신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가슴에 비스듬히 걸친 조백은 왼쪽가슴 부근에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십자형으로 멋스럽게 교차시켰다. 두껍게 조각된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감싸고 무릎까지 부드럽게 내려와 있다. 무릎은 높은 편으로 둔중하고 발끝에는 노리개가 달려있다.
이 상과 관련한 기록은 현재 전하는 것이 없지만 마애좌상의 향우측에 願牌 형식의 각석이 있다. 명문은 우측으로부터 ‘擁護會上神祇華’ ‘南無金剛會上佛菩薩’ ‘忉利會上聖賢衆’ 이라고 되어 있다. 이 각석의 양식과 내용을 바탕으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다른 범종의 패 문양 및 마애각석과의 유사성을 제기한 견해가 있는데, 이를 통해 마애좌상의 조성시기 역시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상과 관련한 기록은 현재 전하는 것이 없지만 마애보살좌상 왼편에 새긴 신중패(神衆牌)가 조성시기 추정에 참고가 된다. 이 상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함께 여말선초에 유행한 보살상의 한 형식을 보여주는 뛰어난 예이다.
<서울 보타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1818호, 보물 제1828호
문화재명칭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磨崖菩薩坐像)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길 60-46 (안암동5가, 보타사) / (지번)서울 성북구 안암동5가 7
관리자(연락처) 보타사(普陀寺)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문화재청자료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은 보타사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여말선초 시기 불상으로, 2014년 3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6호에서 보물 제1818호로 승격 지정 되었다.
보살상은 높이 81.5cm, 폭 30.5cm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있으며, 세운 무릎 위에는 전병을 살짝 쥐고 있는 팔을 올려 놓았다. 왼쪽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리고 있어 유희좌(遊戱坐)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상 조각 양식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 까지 이어 진다.
보살상 머리에는 동판에 투각한 당초문과 화염문 등을 부착한 높은 보관을 쓰고 정면을 향해 앉아 있다. 보관은 원통형으로, 보관의 중앙에는 아미타 화불을 두었다. 화불 주위에는 화염문과 국화문을 따로 제작하여 부착한 것으로 보인다. 보계(寶髻)는 잘라져 나가 자리만 남아 있으며, 수발(垂髮)은 보관 아래로 3가닥으로 갈라져 양 어깨위로 흘러내리도록 표현 되어 있다. 수발은 어깨 위에서 둥근 매듭으로 엮어지고 있다.
보살상의 얼굴형은 방형에 가까우며 볼이 통통하고, 눈은 반개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콧날은 오똑하며 인중은 선명하고 은 작고 도톰하다. 목은 가늘고 길며 삼도가 뚜렷하다.
착의법은 두 개의 천의와 군의를 둘렀다. 천의는 양 어깨 위에 천의를 숄처럼 걸치고 있는 형식인데, 왼쪽 어깨를 따라 내려오다가 양팔에 걸쳐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군의는 허리에 고정되어 있으며 군띠 매듭이 배 위에 걸쳐져 있다. 천의의 끝자락은 ‘十’자로 교차시켰고 그 끝의 주름은 Ω형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천의를 숄처럼 어깨를 덮어내린 착의 형식은 <상원사 목조문수동좌상(국보 제221호)>, <해남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1547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목조관음보살좌상 (1385)> 등에서 살펴볼 수 있어 주목된다. (「제 1차 동산분과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2014, p.29. 참조)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의 장엄구 표현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무릎의 영락장식이 있다. 귀걸이는 화형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있으며, 목걸이는 2줄로 위의 한 줄은 장식 없이 간략하게 표현했다. 아래 줄은 중앙의 큰 화형장식을 중심으로 세 개의 수식이 짧게 달려있어 간략하다. 영락장식은 양 무릎위에 늘어져 있어 이와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양 팔의 팔뚝과 팔목에는 팔찌를 차고 있는데 이 또한 단순한 형태이다.
이처럼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은 여말선초 보살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특히 여성적인 얼굴 표현과 화려한 옷 주름 형식을 하고 있는 점, 당대 불상 중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점으로 볼 때 왕실이나 지배층이 발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은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당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서울 보타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 서울 보타사(普陀寺)는 개운사 암자이다. 보타사 가는 길 안내가 잘 되어 있다.

 

▲ 보타사(普陀寺) 대원암은 현재는 보타사 종무소로 사용 중이다.

 

▲ 보타사(普陀寺) 전경... 최근에 마애불 앞에 있던 대웅전을 철거해서 마애불이 훤하게 드러나 있다.

 

▲ 보타사(普陀寺) 현재 모습과 봄철 대웅전이 있던 때 모습

 

▲ 보타사(普陀寺)는 지금 대불사 중이다. 종합정비조감도...

 

▲ 보타사(普陀寺) 입구 비석군과 연못

 

▲ 보타사(普陀寺) 일주문

 

▲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磨崖菩薩坐像:보물 제1828호) 대웅전을 철거한 후 모습

 

▲ 보타사 마애불은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 보타사(普陀寺) 관음전 옆으로 바위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드는 형상이다.

 

▲ 보타사(普陀寺) 관음전... 최근에 준공을 했다.

 

▲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보물 제1818호).. 앞으로 관음전에 모실 부처님...

 

▲ 보타사(普陀寺)는 작은 절이라 아기자기하다.

 

▲ 보타사(普陀寺) 요사체

 

▲ 보타사(普陀寺) 요사체 옆으로 가면 이벽봉대화상소신기념송비와 벽봉당부도가 있다.

 

이벽봉대화상소신기념송비(李碧峰大和尙燒身記念頌碑)

화상(和尙)의 휘(諱)는 재호(在浩)요 성(姓)은 이씨(李氏)요, 법호(法號)는 벽봉(碧峰)이니 단기(檀紀)4206년(서기1873년) 계유(癸酉)6월8일에 생(生)하였다. 조년(早年)출가(出家)하야 일생(一生)에 수행(修行)이 근엄(謹嚴)하고 성(性)이 인자(仁慈)호선(好善)하므로 세인(世人)이 선지식(善知識)이라 하였다. 4258년(서기1925년) 을축(乙丑)에 칠성암(七星庵)을 창건(創建)하고 계유(癸酉)에 법당(法堂)선방(禪房) 및 요사(寮舍)를 건축(建築)하고 도량(道場)에 식수(植樹)하여 일소가람(一小伽藍)을 완성(完成)하고 30여년을 안거(安居)하다가 81세 되던 갑오(甲午:1954년) 6월8일 갑자(甲子) 즉 자기(自己)의 탄일(誕日) 자시(子時)에 소신(燒身)호국(護國)의 기원(祈願)으로 육해공군무운장구전필승공필취남북통일(陸海空軍武運長久戰必勝攻必取南北統一)이라는 유서(遺書) 한장을 남기고 자수(自手)로 소대(燒臺)에 불을 지르고 화염(火焰)중(中)으로 들어가서 안연(晏然)히 가부(跏趺)하고 앉아서 소신(燒身)하였으니 정력(定力)과 원력(願力)이 아니고야 능(能)히 이러할 수 있으리오. 진실로 내법중(來法中)에 미증유(未曾有)한 바이라. 문인(門人)들이 추모(追募)하며 그 유적(遺蹟)을 영원(永遠)히 보존(保存)하기 위하여 기념(紀念)하는 부도(浮屠)와 단갈(短碣)을 세우노라.<비문을 기록함>

 

 

▲ 옛날 보타사(普陀寺) 마애불 모습-보타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 보타사(普陀寺) 대웅전 철거전 모습... 뒤쪽에 마애불이 있다.

 

▲ 보타사(普陀寺) 기화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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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