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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생가-겁외사(劫外寺)

 

산청답사를 하면서 남명 조식선생, 문익점선생은 많이 알려져 빼놓지 않고 찾지만 성철스님 생가는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큰 도로 주위에 있어서 접근하는 것은 아주 쉽다. 

이곳은 성철스님 생가라 하기보다 겁외사라는 절이라고 볼 수 있다. 성철스님 생가에 겁외사 절을 지어 사찰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가든 절이든 이곳은 재물이 넉넉한 곳으로 무관, 종교인이 나올만한 자리라고 보여진다. 2000년대 들어 생가 뒤 현무봉을 가로질러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생가로 들어가는 맥이 손상을 입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치유된다.

 

 

겁외사(劫外寺)-성철스님 생가
 
성철(性徹 1912~1993. 11. 4)스님의 생가터에 있는 사찰로, 2001년 3월 30일 창건 회향법회를 열었다. 전국에 있는 15곳의 성철스님 문도사찰(門徒寺刹) 중 한 곳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이자 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원택스님이 창건하였으며, 2008년 현재 주지를 맡고 있다. 정기법회는 달마다 음력 3일 오전에 열린다.겁외사(劫外寺)는 시간 밖의 절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로, 그 이름은 성철스님에 의해 지어졌다. 스님은 만년의 몇 해 동안 겨울철이면 백련암을 떠나 부산의 거처에 주석하였고, 그곳을 겁외사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로부터 사명(寺名)을 딴 것이다.사찰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기둥 18개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누각이 있다. 누각 정면에는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현판이, 뒷면에는 벽해루(碧海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벽해루라는 이름은 스님이 평소 즐겨 얘기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뜻)’라는 문구로부터 지은 것이라 한다. 누각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 중앙에 성철스님의 입상을 비롯하여 커다란 염주·목탁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동상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부 불단에 비로자나부처를 모셨으며, 한국 수묵화의 대가인 김호석 화백이 배채법으로 그려낸 성철스님의 진영이 걸려 있다. 외벽 벽화에는 스님의 출가·수행·설법·다비식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대웅전 외의 건물로는 종무소·선방·요사 등이 있다.성철스님 동상 뒤편으로 2000년 10월 복원한 스님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스님이 대원사로 출가하기 전,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던 곳으로, 모든 건물은 새로 건립된 것이다. 혜근문(惠根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선친의 호를 따서 율은고거(栗隱古居)라고 이름붙인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 왼쪽에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 있다.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기념관에는 누더기가사·장삼·고무신·지팡이·친필자료·안경·필기구 등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겁외사 [劫外寺] (두산백과)에서 인용>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본관은 합천(陜川).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徹). 경상남도 산청 출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다.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하였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하였다.성철은 열 살 무렵부터 유서(儒書)를 읽고 각종 경서를 독파하였다. 1930년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기에 이르자 동서양의 철학·문학·논리학 저서를 탐독하였다. 1935년경영가(永嘉)의 「신심명증도가(信心銘證道歌)」를 읽고 지리산의 대원사(大願寺)에 가서, 거사로서 수행하다가 출가하였다.해인사 백련암에서 혜일(慧日)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득도한 뒤, 10년간 금강산의 마하연사,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사, 통도사의 백련암 등에서 안거를 지냈다. 1940년 29세 되던 해에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 중 견성하고,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 파계사 성전암, 봉암사, 묘관음사, 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 회 안거를 지냈다.1965년 문경 김룡사(金龍寺) 하안거 때는 첫 대중법문으로, 『육조단경』, 『금강경』, 「증도가」 및 중도이론을 설법하였다. 196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옮겨가 주석하였고, 1967년에는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였다.방장 취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발표하였다.성철은 평소 제자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잠을 적게 잘 것, 말하지 말 것, 책을 보지 말 것, 간식을 먹지 말 것, 돌아다니지 말 것 등을 권하였다. 성철 자신도 청빈하게 생활하며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고 작은 암자에서 살았다.승가의 수행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여, ‘견성(見性) 방법은 불조(佛祖) 공안을 실참실구(實參實求)하는 것이 첩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공안 참구 과정에서의 자기 점검의 기준으로 동정일여(動靜一如)·숙면일여(熟眼一如)·몽중일여(夢中一如)의 삼관돌파(三關突破)를 제시한다.1976년『한국불교의 법맥』을 출간하여 조계종 법맥을 밝혔고, 1981년『선문정로(禪門正路)』를 비롯하여, 1982년『본지풍광(本地風光)』, 『돈오입도요문돈』, 1986년 『신심명증도가』, 1987년 『자기를 바로 봅시다』, 『(돈황본)육조단경』, 1988년『영원한 자유』, 1992년『백일법문』, 1993년『선문정로평석(禪門正路評釋)』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또 그의 지도하에 선림고서총서 전 37권을 번역·발간하였다.1993년 11월 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그의 제자들은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퇴옹성철대종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성철스님 생가-겁외사(劫外寺)
소재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철로 125
관리자(연락처) 겁외사(劫外寺)(055-973-1615)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 성철스님 생가-겁외사(劫外寺) 배치도

 

▼ 성철스님 생가-겁외사(劫外寺) 누각... 일주문을 대신하여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 적혀있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동상

 

▼ 성철스님 생가-겁외사(劫外寺) 대웅전 측경... 바위가 아주 특이하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동상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동상 뒷모습과 벽해루(碧海樓)...

 

▼ 벽해루(碧海樓)

 

▼ 성철(性徹)스님 법어비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 출입문 혜근문(惠根門)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 안채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 율은고거(栗隱故居)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출가송 조성문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출가송(出家頌)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출가시 해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방... 성철스님께서 30여 년을 지내신 해인사 백련암 염화실 방의 모습이다. 매일 새벽예불을 하면서 백팔참회를 하실 때마다 바라보셨던 석굴암 부처님 사진, 평생 사용하신 낡은 책상, 참시 흰 구름을 벗삼아 한가하게 쉬실 때 앉으시던 등받이 의자,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쓰시던 삿갓 등 스님의 채취가 가득 담긴 일상적인 물건들이다.<현장 안내문 인용>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 사랑방 율은재... 율은(栗隱)은 성철스님의 부친 호이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에 세워진 겁외사 대웅전 측경...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기념관이 길 건너에 세워져 있다. 기념관 건물 현판이 퇴옹전(退翁殿)이라 되어 있다. 퇴옹(退翁)은 성철스님의 호(號)이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동상... 기념관 내에 백옥좌상동상이 있고 바깥에 입상 동상이 있다. 입상, 좌상 동상에는 성철스님의 사리가 봉안 되었다고 해서 기도객들이 많이 모인단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는 현무에서 일편(一片)이 잘 발달 되어 있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더욱 현무가 멋지다.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생가로 유입되는 맥을 차단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치유된다.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생가 용맥도

 

▼ 성철(性徹) 대종사(大宗師) 맥선과 물길... 환포하는 안쪽에 있어 좋은 기운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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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