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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서울 倉前洞 恭愍王 祠堂)

 

서울시기념표석을 답사하다보니 마포구 창전동에 공민왕 사당이 있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조선시대 관리들의 녹봉으로 줄 양곡을 보관하는 창고인 광흥창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공민왕 사당이 있게 된 유래에 대해 몇 몇 자료에서 보니 비슷한 내용이다. 즉 
공민왕이 원혼이 되어 갈 데 없이 떠돌아다니므로 그렇게 떠돌아다니지 말고 만조백관들의 녹을 주는 창고나 지키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곳에 공민왕의 영혼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내부를 관람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사당 앞에 봉제 때 사진을 전시해 두고 있어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는 공민왕, 왕비인 노국공주, 최영장군도 모셔진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국가의 관리들의 녹봉을 보관하는 곳이니 만큼 혹시 해코지 하고자 하는 전 왕조의 신하들이 있다면 공민왕의 사당이 이곳에 있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의미도 포함된 것은 아닐까?
안내문에 보면 제사가 소홀하거나 부정한 일이 있으면 창고에 불이나곤 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어느 정도 그런 방화의 흔적이 아닐까.... 아무튼 이곳이 불이 나거나하면 관리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질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공민왕사당을 배치한 것이리라.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서울 倉前洞 恭愍王 祠堂)
 
서강나루의 곡물창고에 근무하던 창고 관리인에게 현몽한 공민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짓고 매년 음력 10월 1일에 봉제를 하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건립 초기에 이태조는 공민왕을 모시는 사당을 탐탁치 않게 여겨 불신동자를 모셔놓고 신당 또는 당이라 불리웠으나 200여년 전부터 공민왕사당의 칭호를 되찾았다고 한다. 한때 서울시 창전동 33번지로 이전되었으나 현 위치로 돌아왔다고 한다(연도 미상). 원 대지 면적은 50평이었으나 지금은 30평으로 축소되었으며, 1988년경 흙바닥을 시멘트 단으로 조성하였다.<문화재청에서 인용>
조선시대 초 서강 일대에 양곡 보관 창고를 지으려 할 때 동네 노인의 꿈에 공민왕이 나타나 이곳에 당을 짓고 매년 제사 지낼 것을 계시한 데 따라 그를 기리는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전쟁 직후 주민들이 새로 건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당 건물은 전면이 3칸인 데 비해 2칸인 것이 특징이다. 
주위에는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48호인 느티나무 5그루와 주민들이 한때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이 남아 있다. <두산백과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국가등록문화재 제231호
문화재명칭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서울 倉前洞 恭愍王 祠堂)
소재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21길 13 (창전동, 공민왕사당)
관리자(연락처)        마포문화원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서울 倉前洞 恭愍王 祠堂) 원경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입구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과 광흥당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전경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안내문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측경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내부... 사진으로 전시된 내부 모습을 찍은 것이다.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에서 제향 모습(사진)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옆에 위치한 광흥당...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주위에는 오래된 보호수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있다. 180년된 회화나무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으로 들어서는 입구 좌측에 있는 회화나무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앞쪽에 위치한 느티나무...

 

 

 

▼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에서 바라본 회화나무

 

▼ 서강쌍용예가아파트 108동 앞에서 바라본 공민왕 사당

 

▼ 서강쌍용예가아파트 108동 앞에도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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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