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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담골은 원래 보은단(報恩緞)골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온다. 역관 홍순언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보은단골이 고은단골로, 다시 고운담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은 롯데호텔 정문 옆에 있어서 맘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차로 갈 경우에는 주차할 장소가 없어서 힘들다. 인근의 롯데백화점을 이용하고 잠시 짬을 내 이곳 고운담골과 주변의 다른 표석들을 한꺼번에 답사하기를 권한다. 최근에는 서울시 따르릉 자전거가 너무 잘 갖춰져 있어서 저는 시내 표석 답사 때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따르릉 자전거로 일대 표석들을 한꺼번에 돌곤 한다.

이곳 표석 고운담골은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세상을 살면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적선을 많이 배풀다보면 살아서 보은을 받을 수도 있고 살아서 못 받으면 죽어서 또는 후손에게 큰 은덕이 내리고 적덕이 쌓여 칭송을 받게 되는 것이 기본 이치이다. 그런데 요즘을 사는 우리들은 눈 앞에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다보니 갈수록 힘든 세상이 되고 정신이 메말라 가는 것이리라. 고운담골 표석을 답사하면서 적선을 배풀라는 선현들의 명언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고운담골


보은단(報恩緞)골은 중구 남대문로1가와 을지로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고운담골이라고도 불리었던 지역이다. 조선 선조(宣祖) 때 지금의 을지로1가 일대에 살았던 역관(譯官) 홍순언(洪純彦)과 관련한 일화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홍순언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 사신을 수행하여 명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홍순언이 통주(通州)의 유곽을 거닐다가 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몸을 팔게 되었다는 저장성(浙江省) 출신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홍순언은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여인을 구해주었다. 여인은 자신을 구해준 대가로 동침하기를 원하였으나 홍순언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이에 여인이 홍순언의 이름을 알고자 하였으므로 그는 자신이 조선에서 온 역관 아무개라고 일러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수년이 지나 여인은 예부시랑(禮部侍郞) 석성(石星)의 후처가 되었다. 석성은 여인으로부터 지난날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홍순언의 의로움에 감동하여 조선 사신이 올 때마다 홍순언이 왔는지 묻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1584년(선조 17), 홍순언이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왕실의 계보가 잘못 기록되어 이를 시정하는 임무를 맡아 북경을 찾게 되었다. 명문가의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전에 없이 융숭한 환대를 받은 홍순언에게 큰절을 올리는 여인이 있어 자세히 보니 그녀는 지난날 자신이 유곽에서 구해주었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결국 홍순언은 석성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에 선조는 1590년(선조 23) 홍순언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하고, 당릉군(唐陵君)에 훈봉하였다. 또한 여인은 홍순언에게 받았던 은혜에 감사하며, 비단옷감을 손수 짜고 금은보화와 함께 선물로 주었다. 홍순언은 이를 사양했지만, 여인의 간청에 하는 수 없이 비단만을 받아왔다. 이에 석성의 일꾼들이 압록강까지 따라와 비단을 실어다주고 갔는데, 비단에는 ‘보은단(報恩緞)'이란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 이야기가 전해져 홍순언의 집이 있던 마을을 보은단골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후에 음이 비슷한 고운담골로 와전되어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지금의 롯데호텔 앞 도로변에는 이곳이 예전에 고운담골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중구 문화관광 '보은단골의 유래'에서 발췌>


중구 남대문로1가・을지로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마을 이름 유래는 조선 선조 때 譯官 洪純彦이 을지로1가 180번지 부근에 살았던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홍순언이 명나라 北京에 가는 길에 기생집에서 부모의 장례비용 때문에 나온 한 여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 여인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몇 해 후 다시 북경에 가니 그 여인이 명나라 兵部尙書 石星의 부인이 되어 은혜를 갚고자 ‘報恩緞’이라 손수 수놓은 비단 수십 필을 홍순언의 집으로 보내온 것이 알려져, 이 지역을 보은단골 또는 보은담골이라 했으며, 한자명으로 보은단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에 보은단골이 전해져 오는 중에 음이 비슷한 고운담골이 되었고, 줄여서 곤담골이라고도 했으며, 그 음이 변하여 곤당골이 되기도 했다. 또 고운담골이 한자명으로 옮겨지면서 그 뜻을 따라 美墻洞 혹은 麗墻里라 했으며, 이를 줄여서 美洞 혹은 麗里라 하였다. 

또 하나는 홍순언이 자신의 집 담에다 ‘孝悌忠信’ 글자 등을 수놓아 단장해서 담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고운담골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서울지명사전 '고운담골' '미동' '보은단골'에서 발췌>



▼ 고운담골 표석... 탁자형 표석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특이해서 눈에 확 띈다.


▼ 고운담골 표석


▼ 고운담골 표석... 붉은색 빌딩이 옛날 삼성화재 본사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더존을지타워로 바뀌었다. 짧은 시간에 시내 빌딩들의 지각 변동이 많은 것 같다.


▼ 고운담골 표석


▼ 고운담골 표석... 롯데호텔 정문에서 을지로입구역 중간에 있다.


▼ 고운담골 표석


▼ 서울 중구 을지로1가, 2가 부근의 표석 현황


▼ 고운담골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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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