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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포구는 본래 이곳에 세 개의 호수 즉 ‘용호(龍湖), 서호(西湖), 마호(麻湖)’의 명칭이 ‘용산삼개, 서강삼개, 마포삼개’로 바뀌었으며, 나중에는 세 개의 호수를 통틀어 일컫던 ‘삼개<三浦 : 3개의 포구(浦口)>’란 우리말 이름이 한자어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마포(麻浦)’만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삼개포구 표석은 한강둔치에 있다보니 잘 보이지도 않고 글자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다. 인근에 마포구에서 마포나루터라는 표석과 조형물을 세워놓아 서울시 표석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 삼개포구라고 한글로 쓰고 한자로는 마포포구

(麻浦浦口)라고 썼는데 뭔가 통일이 필요할 듯 보이며, 표석 내용도 너무 추상적으로 적혀있어서 좀 자세하게 적을 필요가 있겠다. 서울시에서 표적 정비 작업을 하면서 이 표석은 그냥 지나쳤는지 의아하다.


 



마포나루(麻浦津)

 

서울의 마포구 마포동 강변에 있었던 나루터로 일명 삼개나루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도성에서 서남쪽으로 10리 지점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여의도를 지나 시흥 방면으로 빠지는 길목이다. 나루가 크지 않아서 본래 관선(官船)은 없었고, 사선(私船) 몇 척이 있어서 행인을 건네주었다.조선 후기에 이르러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선상(船商)들이 한강을 거슬러 이곳에 와서 장사를 하였다. 특히 소금과 젓갈을 실은 배들이 모여들어 도성의 소금과 젓갈은 거의 모두 이곳에서 공급되었다. 그리하여 나루터에는 창고를 지어 놓고, 소금, 젓갈, 생선 등을 위탁 판매하거나 중개하는 객주, 여각 등이 생겨났고, 경강상인들의 활발한 상업활동이 있었다.마포의 하류인 서강에는 조선시대에 황해 · 전라 · 충청 · 경기의 조운선이 이곳에 집결하였다.

 

<출처: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 1987.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은 접근하기가 까다롭다.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은 한강둔치로 나가야 볼 수 있다.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과 나란히 있는 토정 이지함 안내판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과 나란히 있는 마포나루 안내판... 중간에 빈공간은 그 뒤에 사진을 첨부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래 전에 찍은 사진이라 아마도 그때 미완의 상태로 설치한 후 뒤에 사진을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한강삼성아파트에는 토정 이지함 선생이 기거했던 토정 터가 있는 곳이다.

 

 

 

마포(麻浦)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 지역에 있었던 포구. 서울의 중서부 한강연안에 위치하여 안산에서 갈라진 와우산 구릉산맥과 노고산 구릉산맥, 용산 구릉산맥이 한강으로 뻗어 세 산맥연안에 호수처럼 발달한 서호, 마포, 용호가 있었는데, 이 세 호를 삼개(三浦·3개의 포구)라고 불렀고, 삼개중 지금의 마포를 마포강, 마포항 등으로 불러, 여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에 마포는 교통 상 중요한 구실을 수행하던 지역이었다. 즉 마포 건너편에 있는 하중도인 여의도를 지나 육로로 시흥과 연결되는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나루터였으며 한강에 위치하였던 오강(五江) 중의 하나로 수운에 큰 역할을 하던 포구였다. 한강은 조선시대에 각 지역과 연결되는 우리 나라 중부 지방의 수운을 담당하던 중요한 강이었다.

이 한강에 뚝섬[纛島]·노량·용산·마포·양화진 등의 오강을 설치하여 각 지역에서 오는 산물의 하역 및 저장을 담당하게 하였다. 마포는 용산·양화진과 함께 주로 삼남 지방에서 오는 곡식을 풀어내려 저장하던 곳이었다. 또한, 황해에서 어획되는 새우·조기 등의 수산물을 풀어놓던 곳으로 농수산물의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였다.

광복 이후 그 기능이 약화되다가 6·25 이후 한강 하구의 수운이 휴전선에 의하여 폐쇄됨에 따라 마포의 농수산물 재분배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서울을 도보형 도시에서 전차형 도시로 전환시켰던 최초의 대중교통 수단인 전차 노선이 1910년경 서대문에서 마포까지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로서의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수산물 재분배 기능을 강화시켰으나 전차의 철거로 마포는 한동안 발전이 둔화되었다. 그 뒤 1970년마포대교(서울대교)가 설치되고 여의도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마포 지역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서부한강변은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 등으로 그동안 발전에 장애가 되어 왔으나 난지도 안정화 사업과 상암지구택지개발, 2002년 서울월드컵경기장 건립 등으로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각종 편의시설, 녹지공간이 조성되고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어 서울 속의 살기 좋은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서울월드컵대회 개최를 계기로 발전하기 시작한 상암동 일대의 DMC프로젝트로 명명된 최첨단 정보산업단지 조성사업은 한국을 21세기 동북아지역의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방송·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산업을 특화하는 미래형 산업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며, 랜드마크를 건립해 금융·법률·컨벤션 등의 국제업무를 지원하고, 다국적기업의 아태지역 본부를 유치함으로써 DMC단지가 동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아, 향후 서울이라는 도시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우측으로 마포나루터 조형물이 보인다.

 

 

▼ 마포나루터... 이 조형물은 마포구에서 설치한 것이다.

 

 

▼ 마포나루터에서 바라본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옆에 있는 토정 안내판과 마포나루 안내판에 사진이 들어가 있다.

 

 

▼ 삼개포구(麻浦浦口) 표석 위치... 주변 다른 표석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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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