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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안성,용인지역 묘지답사를 근자에 다녀왔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오히려 답답한 마음에 2년동안 묘지답사, 풍수답사를 참 많이도 한 것 같다.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아직도 가볼 곳이 많은게 신기할 정도다.

이번에 후배랑 함께 안성에 있는 묘지를 가면서 먼저 용인에 들러 못가본 몇 곳을 찾았고 가장 힘들겠다고 생각한 윤탕로 묘를 무작정 찾아나섰는데 말그대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길도 없는 산을 뚫고 찾았다. 뒤에 가시는 분들을 위해 자세히 그림으로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겨울에는 대략 길이 보이는데 여름철 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길이 안보여 가지를 헤치며 진입해야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 잎이 떨어진 뒤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을듯 싶다. 지금 가게되면 험난한 길을 헤치면서 가야한다.

윤탕로는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동생으로 성종, 연산군, 중종 때 왕들의 비호로 승승장구를 했는데 그러다보니 사림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연산군 때는 임사홍과 더불어 채홍사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중종반정에 참여도 하지 않았는데 왕이 잠저에 있을 때 외삼촌으로 도움을 주었다하여 공신에 등록되었다. 이래저래 미운털이 많이 박힌 관리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윤탕로(尹湯老, 1466년(세조 12년) ~ 1508년(중종 3년) 6월 5일)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외척, 군인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자(字)는 상경(商卿), 호는 나헌(懶軒), 시호는 영평(靈平)이다. 부원군 우의정 윤호(尹壕)의 아들이자 정현왕후(貞顯王后)의 친정남동생이고, 재상 윤필상의 6촌 동생이며,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부마인 윤사로의 6촌 동생이다. 윤필상과 윤사로는 각각 그의 종증조부 윤희제의 아들 중 윤은, 윤경의 아들들이 된다. 연산군의 채청사(採靑使)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음서로 돈녕부봉사가 되었다가 1486년(성종 17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 훈련원첨정과 부정을 거쳐 1494년(연산군 즉위) 훈련원부정(副正) 재직 중 성종 국상 중에 기생집에 출입하다 발각되어 파직, 부처되었으나 풀려났다. 1498년(연산군 4년) 우익위(右翊衛)가 되고, 1505년(연산군 11년) 특별승진하여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년) 채청사(採靑使)로 지방에 내려갔다가 이듬해 9월 중종반정이 발생했다. 그는 중종반정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외조카 중종의 배려로 반정 병충분의정국공신 3등(秉忠奮義靖國功臣三等)에 녹훈되고 파천군(坡川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사후 1519년(중종 14년) 11월의 조광조, 김정 등의 위훈삭제 대상에 선정되었다.

1507년(중종 2년) 공조판서로 승진하였다. 그 해 금부당상(禁府堂上)으로 재직 중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추관으로 참여한 공으로 추성보사우세정난공신 1등(推誠保社祐世定難功臣一等)에 책록되어 파천군(坡川君)에 봉해졌으며 숭정대부로 승진, 숭정대부 행 공조판서 겸 의금부판사에 임명되었으나, 대간의 배척으로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로 전직되었다. 훈척(勳戚)으로서 발호한데다가 성종때부터 성종, 연산군, 중종의 거듭된 비호로 죄를 모면하여 사림파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사림파의 미움을 받아 이들과 갈등했지만 아들 윤진을 소총 홍유손(篠叢 洪裕孫)에게 보내 그에게서 글과 성리학을 배우게 했다. 저서로는 아버지와 공저인 문집 《파천집(坡川集)》이 있다. 1508년(중종 3년) 가자되어 부원군으로 진봉, 파천부원군이 되고, 최종 관직은 보국숭록대부 중추부판사(中樞府判使)에 이르렀다. 1508년 6월 5일 병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경기도 안성군 북쪽 용두산 유좌묘향에 안장되었다. 영평(靈平)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묘비문은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고 뒤에 인조 때인 1626년(인조 4년) 5월 다시 세워졌다. 1519년(중종 13년) 10월 조광조, 김정 등의 정국공신 위훈 삭제 건의에 의해 그해 11월 11일 중종의 칙명으로 위훈삭제 대상자 76명의 위훈 삭제 때 삭제되었다. 조광조 일파가 몰락한 후 공신에 복권되었다.

그의 손자 중 한명인 윤유후는 그의 집안에 전해지던 성삼문의 문집 성근보유고를 정리, 간행하여 성삼문의 문집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았다.<위키백과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소재지 경기 안성시 보개면 북좌리 산 13(주차:보개면 북좌리 198-1)
관리자(연락처) 파평윤씨 소정공파

 

▼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용맥도와 위치

▼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주산, 조산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전경... 햇빛이 반사되어 사진이 망가졌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는 벌초 등을 했는데 관리가 안된 듯 보인다. 멧돼지들이 묘역을 마구 파헤쳐 놓았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표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표... 넘어지기 일보직전이다. 후손들이 묘역을 관리 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묘표는 왜 세워놓지 않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상당히 오랜기간 묘표를 정비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장명등... 화사석은 예전 것이고 옥개석은 최근 것이다. 몸체 중간에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처음 보는 것 같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문인석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석물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입수도두...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후경... 멧돼지들이 마구 파헤쳐 놓았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는 멀리 조산으로 곧트나산(277.7m)을 바라보고 있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빤히 보이는데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지름길로 간다고 덤불숲으로 들어갔는데.... 낫 같은 것으로 통로를 개척하면서 가야한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접근하려면 녹색선을 따라가면 작은 소로가 있는데... 이 역시도 사람들의 왕래가 없다보니 지금은 덤불로 막혀있다. 겨울철에 가면 소로가 보일듯...

본인은 가시나무를 헤쳐가며 진입하였는데...

20여m를 전진하다보면 작은 소로가 보인다.

소로 따라 가다보면 묘역이 보인다.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 윤탕로(尹湯老)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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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