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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이씨 시조 묘

 

풍수답사를 하다보면 갔던 곳을 또 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다. 이는 답사를 단체로 하다보니 내 의지하고는 다르게 가게 되고, 답사 동선도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전의이씨 시조 묘는 두 번 정도 다녀온 곳으로 기억하는데 내 블로그에 누락이 되어 있어서 이번 설연휴에 세종시 처가를 방문하는 길에 먼저 들러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도상 연습을 잘못하는 바람에 방향을 놓쳐서 엉뚱하게 남향터에서 찾다 시간 다보내고 결국 인터넷에 올린 다른 분들 글을 보고 다시 찾아 일정이 뒤엉켰다. 전의이씨 시조 묘는 북향터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금북정맥의 중간 맥이 지나는 길목에서 오는 맥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어서 여러모로 특이한 곳이다.이곳은 복호형이라 하는데 호랑이가 항상 깨어 있도록 앞쪽에 개사(戌砂)가 있어야 하는데 경부선 철길 옆에 구암(狗巖)이 있다. 문중에서 구암을 지키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구암유적비에 적혀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분만 있으면 어찌보면 별거 아닌 것에 목숨까지 거는 참 특별한 민족이다.ㅎ

 

전의이씨(全義李氏)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도(棹)이며, 그 후손 문의공(文義公) 언충(彦沖)과 효정공(孝靖公) 정간(貞幹), 문장공(文莊公) 혼(混)의 후손에서 인물이 많이 나와 3대 인맥을 이루었다. 그중 혼은 시조 도의 8세손으로 고려 충선왕 때 첨의정승을 지냈는데, 그의 손자 익(翊)이 예안(禮安)으로 분적하여 예안이씨로 불렸으나 근래에 다시 전의이씨와 통합하였다. 언충은 고려 고종 때의 장군 천(仟)의 손자로서 충렬·충선·충숙·충혜왕의 4대에 걸쳐 벼슬한 명신이며 정당문학·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냈다. 정간은 천의 현손이며 언충의 재종손으로 조선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임명되고 왕으로부터 사연(賜筵) 및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또, 죽음에 임박했을 때는 세종이 직접 거둥(擧動;임금의 행차)해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 여덟 자의 어필(御筆)을 내렸고, 이후 전의이씨는 모두 이 여덟 자를 가훈으로 삼고 있다. 전의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5명, 대제학 1명, 청백리 6명, 공신 6명을 배출하였다.<두산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전의이씨 시조 묘
소재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산 3-1
관리자(연락처)
전의이씨

 

▼전의이씨 시조 묘 입체영상... 북향이지만 사격이 잘 갖춰져 있다. 

▼금북정맥 상에 위치하는 전의이씨 시조 묘

▼전의이씨 시조 묘 안내석

▼전의이씨 시조 묘 신도비

▼전의이씨 시조 묘 사초지

▼전의이씨 시조 묘 아래에는 백송 두그루가 있다.

▼전의이씨 시조 묘 측경... 

▼전의이씨 시조 묘 전경

▼전의이씨 시조 묘 장명등

▼전의이씨 시조 이도 묘비...

▼전의이씨 시조 묘 석물들...

▼전의이씨 시조 묘 입수도두... 매우 후부하다.

▼전의이씨 시조 묘 후경... 북향인데 안산이 잘 막아주고 있다.

▼전의이씨 시조 묘는 복호혈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 구암이 지속적인 발복을 유도한다고 전해진다.

▼구암으로 인해 경부선 철길이 곡선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구암을 지키게 된 내력이 새겨져 있다. 

▼전의이씨 시조 묘 안산에 해당하는 곳에 재실이 있다.

▼전의이씨 시조 묘 재실 원경...

▼전의이씨 시조 묘 재실 경원사 입구...

▼전의이씨 시조 묘 재실 영사재...

▼영사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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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