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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퇴계선생의 발복지로 흔히 조선8대명당이라 일컬어지는 묘가 퇴계 증조부모 이정 묘이다. 풍수를 한다고 묘 수 천 기를 돌아보면서도 아직도 8대명당을 다 돌지 못했으니 자책을 하며 이번 안동답사를 떠났다. 처음에는 묘만 보려고 들어갔는데 안쪽으로 재사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서 한번 둘러보려고 들어섰는데 개들이 엄청 짖어 댄다. 문을 다 닫아놓아서 겉모습만 보고 내려왔다.묘를 찾아 작산지 위쪽 밭으로 갔더니 작은 소로길이 나온다. 길 따라 갔더니 다행히 묘역이 나온다. 보통 답사를 해보면 추석 전이라면 벌초를 안해서 묘역이 지저분한데 추석이 지나면 어지간한 묘들은 다 벌초를 하여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물며 조선8대명당으로 일컬어지는 묘라면 후손들이 묘역 관리를 잘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내 상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추석이 열흘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벌초를 하지 않아 매우 어수선했다.답사할 마음이 없어져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잡풀을 헤치고 사진 몇 장만 찍고 내려왔다. 묘역 관리를 이렇게 하는데 조선8대명당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공에 메아리만 파문으로 들려온다.

 

 

증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쓴 이정(李禎) 사록(事錄)(贈 嘉善大夫 戶曹參判 行 中直大夫 善山都護府使 諱 禎 事錄)
 
公은 안동부 북쪽 주촌에 살았으며 묘소는 서쪽 작산 속칭 가창산(안동시 북후면 물한동 산 73)에 있고 재암(齋庵)이 있었으니 작암(鵲庵)이라 한다. 천성이 청렴 간결하여 선산부사의 벼슬에서 돌아오실 때,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항상 칭대자급(稱貸自給)하셨다. 선산에 계실 때 따님 한 분을 출가 시켰는데 해평인(海平人) 박근손(朴謹孫)이다. 공이 선산에서 돌아 올 때 아중(衙中)에서 키우시던 만년송(萬年松) 한 분을 주셨다. 박근손이 그것을 심은 후 그의 자손이 대대로 전해 가면서 잘 키워서 그 가지가 구불구불 기고(奇古)하여 지금껏 전해 오고 있다. 공은 타고나신 자질이 개제(愷悌: 얼굴과 기상이 화락(和樂)하고 단아한 것을 말함)하셨으며 빠르고 용감하여 활쏘기와 말타기가 남보다 뛰어나셨다. 일찍이 상국(相國: 정승) 최윤덕(崔潤德)에게 종군하였을 때 건주위(建州衛는 명나라 삼대황제인 영락제 때 야인을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한 행정구역의 하나, 이 建州衛 女眞이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의 세력이 약한 틈을 타서 세력을 키워 淸을 건설하게 되었음)에 큰 호랑이가 험준한 산골에서 구멍을 뚫고 살면서 인근 사람과 가축을 잡아먹으니,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최상공(崔相公)이 유능한 포수를 모집할 때 공이 자청하여 말씀하시되, 「장차 오랑캐를 처 부술 때를 당해서 이 호랑이를 죽여 나의 용력을 시험해 보겠다」하고 즉시 말을 달려 호랑이 굴 앞에 이르렀다. 호랑이가 으르렁대면서 말 뒷덜미로 뛰어 오르는 것을 공은 날쌔게 말머리를 돌려 화살 한 대로 쏘아서 호랑이가 뻗어 뒹굴게 하였으니 온 軍中이 탄복하였다. 안동부서 수 십리 지점에 제비원이란 곳이 있는데, 큰 돌에 미륵상을 새겨서 얹고 집을 지어 그 위에 덮었으니 높이가 수 십 백장(數十百丈)이나 되어 여기에 올라 보는 자 두려워서 감히 아래로 굽어볼 수 없었다. 공은 젊으실 때 여기에 올라서 몸을 공중 전환하여 뛰어 내리셨으니 그 용감하고 날램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효용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부하지 아니하고 항상 겸손하고 조심성이 있었다. 비록 벼슬을 했어도 과목(科目은 과거를 달리 이르는 말)에 급급하지 아니하셨으나 마침내 현달한 지경에 이르렀고, 여러 고을을 역임하는 곳마다 훌륭한 치적을 남기셨다. 세상에 재식(材識)이 뛰어나지 아니한 사람이면 어찌 이에 따를 이 있을까 보냐. 공의 이름은 세조조(世祖朝)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들었다.증손 황(曾孫 滉) 근찬(謹撰)<다음카페 진성이씨후손들이여!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소재지 경북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 산70-1
관리자(연락처) 진성이씨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전경... 추석이 지나고 열흘이 되었는데도 벌초를 하지 않아 도저히 더이상 답사가 힘들었다. 간단히 사진만 몇 장 찍고 내려왔다.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표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문인석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후경...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아래에 있는 증참판 이희열 묘

 

▼ 이희열 묘는 벌초를 다했는데 그 위 조상님 묘는 왜 안했을까? 후손이 서로 다른지...?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가 있는 안쪽에 작산 구강당 및 주사가 있다.

 

▼ 작산 구강당

 

▼ 작산정사 및 가장재사 안내문

 

▼ 작산정사

 

▼ 퇴계(退溪) 증조부모 이정(李禎)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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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