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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견(趙碩堅)과 완성군 이귀정(莞城君 李貴丁) 묘역(墓域)

 

흑석동에서 무려 10년동안 살았고 직장을 따라 돌아다녔지만 본가는 여전히 흑석동에 있어서 지난 2004년까지도 흑석동에서 부모님이 계셨으니 아마도 40년은 더 산것 같은데...
늘상 흑석동 한 복판에 알처럼 생긴 곳에 묘가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게 누구의 묘인지 후손들이 팔아 없애지도 않고 참 잘 보존해왔구나 하고 생각만했다.
어릴때부터 그 묘의 주인공이 전주이씨 왕가의 묘라는 소리만 들었지 거기 가볼 생각은 한번도 안했었다.
풍수를 공부하면서 그 묘가 자주 거론되면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방문을 하게 되었다.
알고 있는 것과 찾아가서 실천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인가 보다.
익히 알고 있는 많은 문화재, 능원묘들도 직접 찾아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이번에 그걸 하나하나 점검하여 모두 찾아볼 생각이다.
흑석동 시장에 들어서니 너무나 익숙한 곳이다. 그곳에서 전주이씨 덕천군파종중회가 있는 건물로 들어서니 주인은 없다. 그런데 문은 개방되어 있어서 묘소를 둘러볼 수 있었다. 문을 개방해주시는 마음에 항상 감사드린다.

 

조석견(趙碩堅)과 완성군 이귀정(莞城君 李貴丁) 묘역(墓域)
 
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은 이귀정을 비롯하여 그의 장인인 조석견과 장모, 아들 상산군(商山君) 등 후손들의 묘역이며, 묘역 안과 주변에는 묘 10기와 석물이 다수 남아 있다.
이귀정은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증손으로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손자이다. 완성군은 9남을 두었는데, 차남 상산군 후손 중에서 이억손(李億孫)ㆍ이응(李凝)ㆍ이준(李準)ㆍ이명윤(李命允)ㆍ이익년(李翼年)ㆍ이규년(李奎年)ㆍ이기임(李基任)ㆍ이덕주(李德周)ㆍ이명은(李命殷)의 9명이 문과급제를 했다. 완성군의 4남 함풍군(咸豊君)은 외아들 이수광(李秀光)을 두었고 이수광의 3남 이유간(李惟侃)의 후손 중에서는 이경직(李景稷)ㆍ이경석(李景奭) 형제와 그 후손들이 자그만치 도합 34명이나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전주 이씨 문중의 소파로서는 단연 제일이었다.
함풍군가는 사상적으로 소론파인데, 일찍이 경직의 증손 이진유(李眞儒)가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노론을 배척하는 상소문의 우두머리가 되어 영조 6년(1730)에 죽음을 당하자, 아우 이진검(李眞儉)ㆍ이진휴ㆍ이진급(李眞伋)ㆍ이진위(李眞偉)도 일제히 벼슬을 버리고 강화도로 들어가 터를 잡고 조선 후기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여 강화학파(江華學派)를 형성하는 등 학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강화학파는 정제두(鄭齊斗)를 시조로 하는데 이후 이광명(李匡明)ㆍ이광사(李匡師)ㆍ이건방(李建芳) 등 가학(家學)으로 이어지고, 당쟁의 폐해를 비판하고 갑오개혁이 단행되자 강화로 낙향하였던 이건창(李建昌)과 일제강점기에 국학 진흥에 힘썼던 이건방의 제자 정인보(鄭寅普)에 의해 근대적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강화학파는 박은식(朴殷植)ㆍ신채호(申采浩)ㆍ김택영(金澤榮) 등 한말에 활약하였던 민족주의 학자들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서울특별시 기념물 17호
문화재명칭 조석견(趙碩堅)과 완성군 이귀정(莞城君 李貴丁) 묘역(墓域)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54-9(묘역 맨 아래에 재실이 있음)
관리자(연락처) 전주이씨 완성군파종중

 

*계보에서 색깔로 된 이름을 클릭하면 바로가기 됩니다.

★전주이씨 덕천군파 계보                
정종대왕   10왕자
덕천군
  제1자
新宗君
(신종군)
  장남
莞城君
(완성군)
  차남
商山君
(상산군)
  장남
億孫
  惟貞
(유정)
 
(응)
   
   
                 
                                 
                4남
咸豊君
(함풍군)
  외아들
秀光
  3남
惟侃
(유간)
  1.李景稷(이경직)   이장영,
이후영,
이정영
                   
                      2.李景奭(이경석)  

 

 

▼ 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 안내판...

▼ 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에는 전주이씨 덕천군파 완성군종회에서 관리한다..

▼ 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 오르는 길...

▼ 조석견 묘... 사위인 완성군 이귀정 묘역이 들어서서 전형적인 외손 발복터가 되었다. 

▼ 조석견과 부인의 합장묘... 묘비 조차 없다... 조석견에 대한 자료도 없다..

▼ 조석견 묘 석물들...

▼ 조석견 묘 후경... 완성군 이귀정 묘역 맨 위에 위치한다..

▼ 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 입수처... 예전에 내가 흑석동 살때 아파트가 없을때 가느다란 능선이

이곳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 완성군 이귀정 묘역

▼ 완성군 이귀정 구묘비 

▼ 완성군 이귀정 묘비... 부인 조씨는 조석견의 딸..

▼ 완성군 이귀정 묘 장명등...

▼ 완성군 이귀정 묘 좌우 문인석

▼ 완성군 이귀정 묘 후경...

 

▼ 완성군 이귀정의 아들 상산군 이계보 묘역

▼ 상산군 이계보 묘 석물들...

▼ 상산군 이계보 묘비

▼ 상산군 이계보 묘 전경.. 아버지 완성군 묘 아래에 위치...

▼ 상산군 이계보 묘 후경... 흑석동 서쪽 언덕을 안산으로 삼았다..

 

이억손(李億孫) 
 
1497년(연산군 3)∼1538년(중종 3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대춘(大春)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는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이고, 조부는 완성군(莞珹君) 이귀정(李貴丁)이다. 부친 상산부수(商山副守) 이계보(李繼保)와 모친 하맹윤(河孟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황준(黃濬)이다.
1522년(중종 1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이후 사서(司書)·홍문관부수찬·평안도순변사·종사관·군기시정(軍器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1535년(중종 30) 동부승지(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가 파직되었으나, 이후 예조참의(禮曹參議)로 다시 복직되었다. 이듬해 우부승지에 올랐다가 파직되었으나 또 다시 등용되어 황해도관찰사·좌승지 등을 지내다가 재직 중 사망하였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 상산군 이계보의 아들 이억손 묘

▼ 이억손의 손자 이응 묘

▼ 석양녘에 고양이가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고양이가 앉아있기 좋아하는 곳은 수맥이 흐른다..

<제 다른 블로그 '좋은터 길라잡이' 2012. 3. 1 올린 글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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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