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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남부관아 터(漢城府南部官衙址)

 

한성부(漢城府) 남부(南部)는 조선시대 초기 도성인 한성부를 5개로 나눈 행정구역의 하나로, 광통방(廣通坊)·호현방(好賢坊) 등을 비롯 도성 내외의 11개방(坊)을 관할하던 관청이다. 조선의 수도 한성부(漢城府)는 부(部), 방(坊), 계(契), 동(洞)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성곽 안과 성곽 바깥 10리에 해당되는 성저십리(城底十里)를 포함하는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서울시의 강북지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정2품 한성판윤(漢城判尹)이 한성부의 최고책임자였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한성부는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로 이루어진 5부(五部) 체계가 바뀐 적이 없지만, 그 하부 구획인 방(坊)과 계(契), 동(洞)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이를테면, 조선 초기에는 52방이었던 것이 세종(世宗) 때는 49방으로, 영조(英祖) 때는 46방으로, 그리고 1865년(고종 2)에는 47방으로 변경되는 식이다. 한성부 남부관아(南部官衙) 터는 이중 남부를 관할하던 관청으로, 오늘날의 구청에 해당되며, 대체로 중구 대부분과 용산구 일부가 여기에 포함된다. 남부의 행정구역은 크게 바뀐 적은 없는데, 광통방(廣通坊)·호현방(好賢坊)·명례방(明禮坊)·대평방(大平坊)·훈도방(勳陶坊)·성명방(誠明坊)·낙선방(樂善坊)·정심방(貞心坊)·명철방(明哲坊) 등 성내 9개방과 성신방(誠身坊)·예성방(禮成坊)의 성외 2개방 등 모두 11개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0년 10월 1일 시행된 조선총독부지방관제(朝鮮總督府地方官制)에 따라 한성부가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었고, 조선총독부가 직접 경성을 관할하게 되면서 남부관아 역시 기능을 잃었다. 이어 1914년 4월 1일에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기존에 유지되던 부, 방, 계, 동 체계가 폐지되었다. 이로써 행정구역으로서 한성부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서울 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한성부 남부관아 터(漢城府南部官衙址) 표석

▼  한성부 남부관아 터(漢城府南部官衙址) 표석... 을지로입구역 8번출구 뒤쪽에 있다.

▼  한성부 남부관아 터(漢城府南部官衙址) 표석

▼  한성부 남부관아 터(漢城府南部官衙址) 표석... 롯데호텔 앞 도로변에 있다.

▼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표석 위치

▼  한성부 남부관아 터(漢城府南部官衙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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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