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환국 터(典圜局址)

 

전환국(典圜局)은 1883년(고종 20)에 설치된 상설 조폐기관으로, 당면한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통화정책을 정비하기 위해 화폐발행을 주관하던 관청이다. 전환국(典圜局) 터는 그 전환국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55에 해당한다.
전환국(典圜局)은 조선 후기 화폐를 다량으로 발행하고자 근대식 기계를 도입하여 1885년(고종 22)부터 1898년(고종 35)까지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내던 관청이다. 전환국은 조선 정부가 맞닥뜨린 재정위기를 보완하고, 문란해진 통화정책을 정비할 목적에서 1883년(고종 20) 독립된 상설조폐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전환국(典圜局) 터는 그 전환국이 소재하였던 장소로 현재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55에 해당한다. 처음 조선 정부는 전환국을 지금의 서울 태평로2가에 설치하였으나 1892년(고종 29)에 인천으로 옮기게 하였다. 이는 일본인의 영향력이 강한 인천에서 자본과 기술을 미끼로 조선의 화폐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속셈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1900년 전환국을 다시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일본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1898년(고종 35)을 전후로 자주적 독립과 자강에 대한 의지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가운데, 일본과 대립하던 러시아를 배경으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한 대한제국 정부의 조치였다. 1904년 전환국이 폐지될 때까지 21년 동안 전환국에서 주조한 화폐의 총액은 1,896만 685환인데, 그중 백동화는 1,674만 3,522환으로 주조된 총액의 88%를 차지하였다. 이런 백동화의 남발은 화폐제도의 정착을 어렵게 하고, 통화질서의 문란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환국의 설립은 우리나라에 근대적 화폐제도를 도입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결국 1904년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에 의해 전환국이 폐지됨으로써 통화 주권에 대한 대한제국 정부의 지배권 확보는 최종적으로 좌절되었다. 전환국 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현재 태평로2가 부영태평빌딩(구 삼성생명빌딩)과 신한은행본점 사이에 세워져 있다.<서울시 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전환국 터(典圜局址) 표석

▼ 전환국 터(典圜局址) 표석

▼ 전환국 터(典圜局址) 표석은 신한은행 본점과 부영태평빌딩(구 삼성생명) 사이에 있다.

▼ 전환국 터(典圜局址) 표석 위치

▼ 중구 서소문 일대 표석 위치

▼ 전환국 터(典圜局址) 표석 위치

728x90
반응형
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