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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로구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도 궁궐이 밀집되어 있고 각 관청과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곳이어서 역사문화유적지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따라서 기념표석 또한 가장 많을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기념표석이 가까운 거리에 다수가 밀집되어 있어서 관심있는 분들이 답사를 하실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현황은 별도의 관리번호가 없이 표석명으로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려다보니 여러가지로 불편한게 많아서 임의로 구청별, 표석명의 가나다 순으로 임의로 관리번호를 부가하여 편리하도록 했는데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종로구 설치현황(2)

<웹사이즈로 올렸더니 글자가 너무 작아져서 넓게 올렸으니 웹으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양해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표석 종로구 설치현황('20.02.20 현재)(2/2)

총괄 순서

구청별순서

구청별

설치연도

표석명

표석내용

표석위치

161

종로 79

종로구

1999

순화궁 터

헌종(憲宗)의 후궁인 경빈(慶嬪) 김씨(金在淸의딸)의 사당인 순화궁(順和宮)이 있었던 자리이다.

인사동5길 29 (인사동 194-27)

162

종로 80

종로구

2000

승문원 터
承文院址

조선시대에 외교 문서를 관장하던 관청의 터. 조선 건국 초에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로 설치되었다가 1410년(태종10)에 승문원으로 개편되었다. 처음에는 이곳 양덕방(陽德坊)에 있었으나 1443년(세종25) 이후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으로 옮겨 다니다가 1787년(정조11)에 이르러 다시 이곳으로 이전되었으며 1895년 을미개혁 때 폐지되었다.

창덕궁1길 41(계동140-55)

163

종로 81

종로구

2007

신간회(新幹會)본부 터 Original site of the Singan Society Heagquarters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민족협동전선으로 출범한 신간회가 1929년 이후 본부를 두었던 곳이다.

종로104(종로2가 55-1)

164

종로 82

종로구

2015

신교 터
新橋

신교는 청계천 발원인 백운동천(白雲洞川)의 상류에 있었던 돌다리이다. 영조의 후궁 영빈(暎嬪)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宣禧宮)을 인왕산 기슭에 지으면서 놓았다. 1920년대 백운동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필운대로 116(신교동 60)

165

종로 83

종로구

2011

신흥대학 터
新興大學址

일제 강점기 서간도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인 신흥대학이 1949년 3월 20일 정식 대학으로 인가받아 개교한 자리. 신흥대학은 1955년 회기동으로 이전하여 1960년 경희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수송동 80-7(수송공원내)

166

종로 84

종로구

2005

쌍홍문 터
雙紅門址
Site of Ssanghongmun Gate

쌍홍문은 조선 14대 임금 선조가 조원(趙瑗, 1544~1595)의 두 아들 희정(希正)과 희철(希哲)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내린 한 쌍의 정려문(旌閭門)이다. 효자동이라는 동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자하문로24길 51(효자동 172-1)

167

종로 85

종로구

1998

안동별궁 터
安洞別宮址

조선시대 초부터 왕실의 거처였다가 마지막 황제 순종의 가례(嘉禮)처로 사용되던 궁터

율곡로3길 4(안국동 175-2)

168

종로 86

종로구

2001

야주개
夜珠峴
Yajugae Ridge

야주개는 이곳 신문로와 당주동 경계에 있던 고개이다. 경희궁(慶熙宮)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현판 글씨가 빛이 나서 밤에도 이 고개까지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문안로 91(신문로1가 24)

169

종로 87

종로구

2000

양현고 터
養賢庫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금을 담당하고 석전제(釋奠祭)의 비용을 조달하던 기관의 터. 세조 때에 철폐되어 풍저창(豊儲倉)에 귀속 되었으나 1483년(성종14) 유생들의 상소로 다시 양현고로 환원되어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성균관로 55(명륜동3가 2-1)

170

종로 88

종로구

2016

어니스트 베델 집터
裵說家址
Site of  Ernest Thomas Bethell’s House

1904년 조선에 온 영국인 베델(한국명 배설(裵說), 1872~1909)은 이해 7월『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창간하여 항일 언론활동을 힘껏 지원하였다. 이곳은 그가 조선에 와서 정착해 사망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산 한옥 터이다.
A native of England, Ernest Thomas Bethell(1872-1909) founded 『The Korea Daily News』in July 1904. He was a strong advocate of anti-Japanese journalistic activities in Korea. This is the site of hanok(Korean traditional house) in which Bethell and his family resided, from the time of his arrival in Korea, until his death.

홍파동 2-2(도로명주소 없음)

171

종로 89

종로구

1988

어영청 터
御營廳址

인의동 이 언저리는 왕실과 도성의 수비를 맡았던 군영(軍營) 터

창경궁로109(인의동 112-2)

172

종로 90

종로구

2001

어유구 집터
魚有龜家址
Site of Eo Yugu’s House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어유구(1675~1740)가 살던 집터이다. 한성부윤을 지낸 어윤형의 아들로 1699년(숙종 25) 과거에 급제한 후 정언, 수원부사, 병조참의, 대사간, 승지 등을 지냈다. 『긍재편록(兢齋編錄)』, 『농암사단칠정변(農巖四端七情辨)』을 지었다.

창경궁로 258(명륜동2가 21-26)

173

종로 91

종로구

2001

어의궁 터
於義宮址
Site of Eouigung House

어의궁은 조선 17대 임금 효종(1619~1659)이 왕자 시절에 살던 집이다. 숙종이 용흥구궁(龍興舊宮)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었다. 조선 후기에 왕실의 가례를 거행하던 대표적인 별궁이다.

대학로 39(효제동 22-3)

174

종로 92

종로구

2000

여단 터
濾祭壇
Site of Yeodan Altar

조선조 정종 2년 (1400)부터 자손 없이 죽은 사람들의 원혼(怨魂)을 제사 지냈던 단으로 1908년에 폐지 되었다.

평창동 113-1(도로명주소 없음)

175

종로 93

종로구

2005

여운형 집터
呂運亨家址
Site of  Yu Un-Hyeong's House

몽양 여운형(1886~1947)은 상해에서 1919년 4월 의정원 의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고, 1936년 조선중앙일보 사장 재직 시 손기정 사진에 일장기를 말소하였으며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활동하다가 암살당하였다.

창덕궁1가길 7(계동 140-10)

176

종로 94

종로구

2008

옥호정 터
玉壺亭址

순조의 장인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제택 (第宅)인 옥호정이 있던 곳이다. 전해오는 ‘옥호정도(玉壺亭圖)’에 그려진 ‘일관석(日觀石)’ 각자(刻字)바위가 현재 북악 동쪽 산 중턱에 남아 있다. 

삼청로 131-1(삼청동 127)

177

종로 95

종로구

2000

용동궁 터
龍洞宮址

조선조 명종의 장남 순회세자(順懷世子)가 책봉을 받았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나 세자빈의 속궁(屬宮)이 되었다. 조선말 경운궁(현 덕수궁) 부근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가 독일인 묄렌도르프에 하사되었으며 그 뒤 엄비의 소유로 변하여 숙명여학교가 설립, 운영되었다.

수송동 80-7(도로명주소 없음)

178

종로 96

종로구

1999

용성스님 거주터
龍城居住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으로 불교 혁신운동을 펼친 백용성(白龍城, 1864~1940)스님이 활동하던 곳

율곡로10길 87(봉익동 3)

179

종로 97

종로구

2003

우미관 터
優美館址
 Former Site of Umigwan(Cinema)

우미관은 우리 나라에 영화문화가 들어온 초창기인 1912년에 개관되어 단성사(團成社)·조선극장(朝鮮劇場)과 더불어 사랑받던 영화관이다. 2층 벽돌 건물로 수용 인원 1000명 정도의 큰 극장이었다.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였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오락물을 상영하였다. 이 극장은 광복 이후에도 이곳에 존속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된 후 1959년 옛 화신백화점 뒤로 이전하였다.

종로 84(종로2가 75-2)

180

종로 98

종로구

1995

우포도청 터
右捕盜廳址

포도청은 조선시대 도성 안팎의 치안과 순찰을 담당하였던 관청으로서 좌우 포도청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쪽 지역을 담당하였던 우포도청 자리.

종로 14(서린동 154-1)

181

종로 99

종로구

1991

원각사 터
圓覺社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극장 원각사가 있었던 곳. 1909년 이인직(李人稙 1882~1916)의 설중매, 은세계 등이 공연되었음.

새문안로 79(신문로1가 42)

182

종로100

종로구

1999

육군무관학교 터
陸軍武官學校址
Site of Military Academy

무관학교 관제에 따라 근대적 초급 장교를 양성하려고 1896년 1월 설립한 육군무관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육군무관학교는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유명무실해졌고 1909년 9월 군부(軍部)와 함께 폐지되었다.
This site is where the Military Academy of the Empire of Korea was established in 1896 to prepare and train junior officers.

새문안로3길 12(신문로1가238)

183

종로101

종로구

1991

육의전 터
六矣廛

육의전은 조선시대에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한 서울의 여섯 시전(市廛)을 말한다. 이곳은 육의전 중 으뜸인 선전(廛)이 있던 자리로 비단을 주로 취급하였다. 

종로 51(종로2가 6)

184

종로102

종로구

1987

의금부 터
義禁府址

조선조(朝鮮朝) 관리·양반 윤리에 관한 범죄를 담당하던 관아자리

종로 47(공평동 100)

185

종로103

종로구

2000

의영고 터
義盈庫址

호조에 소속되어 궁중에서 쓰이는 기름, 꿀, 채소 등의 물품출납을 맡아 보았던 관청의 터. 1392년(태조1)에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설치하였다. 태종대와 세조대의 관제 개편을 통해 직제가 정비되었으며, 1882년에 폐지되었다.

사직로8길 60(도렴동95-1)

186

종로104

종로구

2015

의학교 터
醫學校

의학교는 1899년 대한제국에서 김홍집의 집에 설립한 최초의 근대의학 교육기관이다. 졸업생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였다. 1907년 대한의원 교육부로 개편되었다.

율곡로 46(경운동 90-4)

187

종로105

종로구

1993

이동녕 주석 집터
李東寧主席家址

이곳(봉익동 50)은 임정(臨政)의 이동녕(1869~1940)주석이 1885년 이래 국외로 망명할 때까지 독립협회운동·을사조약 반대 신민회 운동을 폈던 곳.

종로 157(훈정동 1-2)

188

종로106

종로구

2001

이문 터
里門址
Site of lmun Guard Post

이문은 조선시대에 마을의 방범과 방재를 위해 서울의 주요 골목 입구마다 설치한 문이다. 문 위에 다락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번갈아 올라가 도둑과 화재를 살폈다.

종로 85-1(종로2가 22-2)

189

종로107

종로구

1995

이상재 집터
李商在家址
Site of Yi Sangjae's House

이상재(1850~1927)는 한말 및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정치가·사회운동가이다.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구성하여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고, 1927년에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좌·우익이 합작하여 만든 사회단체인 신간회(新幹會)의 초대회장이 되었다.

북촌로 15(재동 83)

190

종로108

종로구

1999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터

이언저리는 이이(李珥) 이율곡(1536 ~ 1564)선생이 살던 절골 집터 

인사동길 7-1(인사동 137)

191

종로109

종로구

2015

이정귀 집터
李廷龜

이정귀(1564~1635)는 인조대 좌의정을 지냈으며 문장과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 고조부 이석형(李石亨)이 성균관 남쪽에 자리 잡은 이후로 이정귀를 비롯한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살았다.

명륜동4가 1-2(도로명 주소 없음)

192

종로110

종로구

2017

이준 집터
李儁家址
Site of Yi Jun’s House

이준(1859~1907)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과 함께 특사로 파견될 때 살던 집이 있었다. 이준의 아내 이일정(李一貞)이 190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인상점(婦人商店)을 연 곳이기도 하다.

율곡로 53(안국동 148)

193

종로111

종로구

2000

이현궁 터
梨峴宮址
Site of Ihyeongung House

이현궁은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1575~1641)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인조 이후 행궁이나 왕족의 집, 군영(軍營) 등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로 112-7(인의동 28-9) 

194

종로112

종로구

2001

인평대군 집터
麟坪大君家址
Site of Prince Inpyeong’s House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1622~1658)이 살던 집터이다. 1865년(고종 2) 왕실에서 사용하는 관(棺)을 제작·보관하는 장생전(長生殿)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화장1가길 6(이화동 27-2)

195

종로113

종로구

2001

자수궁 터
慈壽宮址
Site of Jasugung House

자수궁은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芳蕃, 1381~1398)이 살던 집이다. 문종 때 세종 후궁들의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으며, 자수원이라고도 하였다.

필운대로 68(옥인동 45-1)

196

종로114

종로구

2001

장예원 터
掌隸院址
Site of Jangyewon Government Office

장예원은 조선시대에 노비 장부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고 1764년(영조 40) 형조에 소속되어 보민사(保民司)로 바뀌었다.

세종대로 169(세종로동 155-4)

197

종로115

종로구

2001

장원서 터
掌苑署址

궁궐의 후원과 각지의 과수원을 관리하고 궁중과 여러 관아에 과일과 화초 등을 공급하던 관아 터 

북촌로5나길 11(화동25-1)

198

종로116

종로구

2001

장흥고 터
長興庫址
Site of Jangheunggo Government Office

장흥고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관청에서 쓰이는 돗자리, 종이 등을 공급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고 1894년(고종 31) 궁내부로 편입되었다.

사직로8길 31(내자동 201-11)

199

종로117

종로구

1997

전옥서 터
典獄署址

조선시대에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한말 항일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곳

청계천로 41 (서린동 33)

200

종로118

종로구

1992

전의감 터
典醫監址

조선시대 궁중에 쓰이는 의약을 제조하고 약재를 재배하던 관아 터. 조선말에 우정총국(郵征總局)이 들어섰다. 

우정국로 59(견지동 39-7)

201

종로119

종로구

2005

전차 차고 터
電車車庫址
Site of Electric Car Shed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전차 종점으로 차고가 있던 곳. 또한 종로행이나 청량리 행 손님이 전차를 갈아타기도 하였다.

청계천로 279(종로6가 289-3)

202

종로120

종로구

1992

정도전 집터
鄭道傳家址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살던집 터. 후일 사복시(司僕寺)·제용감(濟用監)이 이 자리에 들어섰고 일제 때에는 수송국민학교(壽松國民學校)가 세워졌었다.

삼봉로 43(수송동 146-2)

203

종로121

종로구

1988

정철 선생 나신 곳
鄭澈生家址

이 언저리 장의동(壯義洞)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松江) 정철 선생(1536~1593)이 태어난 곳

자하문로 105(청운동 123)

204

종로122

종로구

1990

제생원 터
濟生院址

조선초의 서민 의료기관 터. 극빈자의 치료와 미아의 보호를 맡았으나 세조때 혜민서에 병합되었다. 조선조말엽 이 터에 계동궁(桂洞宮)이 들어섰다. 

율곡로 75(계동 140-2)

205

종로123

종로구

2000

제용감 터
濟用監址

조선시대 궁중의 모시, 마포 등 옷감의 직조와 의복의 제조·공급을 담당하던 관청인 제용감(濟用監) 터

종로1길50(중학동 19)

206

종로124

종로구

1990

제중원 터
濟衆院址

제중원은 1885(고종 22)년 알렌(Allen)의 제의에 따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산하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이다. 처음에는 광혜원(廣惠院)으로 이름 붙였다가 취소하고 제중원으로 하였다. 2년 뒤에 구리개(銅峴)로 옮겼다. 제중원 건물은 홍영식(洪英植)의 집이었다.

북촌로 15(재동 83)

207

종로125

종로구

1987

조광조(趙光祖)선생 살던 집터

정암(靜庵)조광조(1482-1519) 선생이 살던 한양골 집터(돈의동)

삼일대로 438(낙원동 9)

208

종로126

종로구

2002

조선건국동맹 터
朝鮮建國同盟址
Site of The Korean Indendence Alliance

조선건국동맹은 1944년 8월 10일 조국의 광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이다. 중심인물은 여운형, 조동호, 현우현, 황운, 이석구, 김진우 등이며, 산하조직으로 조선농민동맹을 두었다.

삼일대로461(경운동 89-4)

209

종로127

종로구

2007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터
Original site of the Joseon Langusge Society

조선어학회는 1921년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의 제자들이 한글의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발족한 조선어 연구회의 후신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한글학회로 이어졌다.

율곡로3길 74-15(화동130-1)

210

종로128

종로구

2005

조선일보 창간 사옥 터
朝鮮日報創刊 社屋址
Site of Office of Chosun Ilbo(Newspaper)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사 사옥 터. 조선일보는 3·1운동 이후 민족 자본으로 이곳에서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계천로 57(관철동 43-11)

211

종로129

종로구

1987

조지서 터
造紙署址
Site of Jojiseo Office

조지서는 국가에서 사용하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으로 1415년(태종 15) 조지소(造紙所)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1466년(세조 12) 조지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국가문서에 쓰이는 표전지(表箋紙), 지폐 용지인 저화지(楮貨紙)와 기타 서적 제작용 종이를 생산하였다.

세검정로 267(신영동 199-3)

212

종로130

종로구

1998

종침교 터
琮琛橋址

조선조 성종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과 허침(許琛)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터

사직로8길 39(내자동 223)

213

종로131

종로구

1995

좌포도청 터
左捕盜廳址

조선시대 정선방(貞善坊)에 있던 죄인을 다스리던 관청 터

돈화문로26(묘동59-8, 56)

214

종로132

종로구

2001

죽동궁 터
竹洞宮址
Site of Jukdonggung Palace

죽동궁은 순조의 장녀 명온공주와 그 남편 김현근이 거주하던 곳이다. 이곳은 당시 김현근이 앓고 있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들이 대나무 칼춤을 추며 병이 낫기를 기원했다고 해서 죽도궁(竹刀宮)으로 불리다가, 후에 죽동궁이 되었다. 고종 때에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살기도 하였다.
Site of Jukdonggung Palace
Jukdonggung was the palace where Princess Myeongon, the eldest daughter of Sunjo, the 23rd king of the Joseon Dynasty, and her husband Kim Heyongeun lived.

인사동5길 38(관훈동 198-42)

215

종로133

종로구

2001

준천사 터
濬川司址
Site of Juncheonsa Government Office

준천사는 도성 안 개천을 준설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1760년(영조 36) 설치되었다가 1894년(고종 31) 준천 업무를 한성부에 이관하면서 폐지되었다. 준천사가 있던 동네를 준천사동이라 했는데 1914년 관수동으로 바뀌었다.

돈화문로 1(관수동 91-1)

216

종로134

종로구

1989

중부학당 터
中部學堂址
Site of the Central District School

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의 중부·동부·서부·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다. 북부 관광방(觀光坊)이었던 이곳에 중부학당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종로1길 50(중학동 19)

217

종로135

종로구

1988

지석영 집터
池錫永家址

종두법 보급과 서양 의학 도입, 국문(國文)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지석영(池錫永, 1855~1935)의 집터.

삼일대로 444(낙원동2)

218

종로136

종로구

1995

지청천 장군 집터
池靑天將軍家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항일 독립투사 지청천장군의 집 터

삼청로 124-1(삼청동 37)

219

종로137

종로구

1995

진단학회 창립터
震檀學會創立址

한국역사 및 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1934년 5월 7일 창립한 진단학회 사무소가 1936년 초 성북동으로 옮겨갈때까지 있던 자리.

가회동 218(도로명 주소 없음)

220

종로138

종로구

1999

창의궁 터
彰義宮址
Site of Changuigung House

창의궁은 조선 21대 임금 영조(1694~1776)가 왕자 시절에 살던 집이다. 영조 즉위 후 왕실 사당 등으로 쓰였다. 191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효자로19(통의동 35-23)

221

종로139

종로구

1990

척화비 있던 곳
斥和碑

19세기 후반 고종의 생부(生父)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서양인의 조선침투를 방어 격퇴시켰다는 의미로 전국 주요지역에 세웠는 바 그중의 한 척화비가 있었던 곳.

종로2가 84-11(도로명주소 없음)

222

종로140

종로구

1998

청송당 터
聽松堂址

조선시대 조광조(趙光祖)의 제자로 대학자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이 두문불출하면서 공부했던 독서당 터

자하문로 136(청운동 89-3)

223

종로141

종로구

2002

총융청 터
摠戎廳址
Site of Chongyungcheong Military Encampment

총융청은 인조2년(1624)에 설치된 조선시대의 중앙 군영(軍營)이다. 광주(廣州)·양주(楊州)·수원(水原) 등 경기도 지역의 군사 일을 맡았으며, 영조 23년(1747)에는 북한산성(北漢山城)의 수비를 맡기도 했다. 고종21년(1884)에 폐지되었다.

세검정로9길 1(신영동 219-4)

224

종로142

종로구

1997

최시형 순교 터
崔時亨殉敎址

동학 제2세 교조 해월 최시형이 동학혁명을 지도하다가 순교(1898)한 터

돈화문로 26(묘동 59-8, 56)

225

종로143

종로구

2002

충훈부 터
忠勳府址
Site of Chunghunbu Office

충훈부는 국가에 공훈이 있는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공적을 보존하는 일을 맡아보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처음에는 공신도감, 충훈사로 부르던 것을 1459년 세조 때 충훈부로 고쳤다. 6·25전쟁 때 대부분 파손되었으며, 1953년 보신각을 복원할 때 그 기와 일부를 사용하였다.

인사동길 62(관훈동 130-3)

226

종로144

종로구

2001

취운정 터
翠雲亭址
Site of Chwiunjeong Pavillion

취운정은 1870년대 중반 민태호(閔台鎬, 1834~1884)가 지은 정자이다.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이곳에 유폐되어 『서유견문』을 집필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회합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북촌로112 (삼청동 25-23)

227

종로145

종로구

2002

탕춘대 터
蕩春臺址
Site of Tangchundae

탕춘대는 1506년 연산군이 세운 누대(樓臺)이다. 연산군은 경치가 좋은 이곳 일대를 연회장소로 삼고 시냇물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위에 탕춘대를 지었다. 영조 때에는 이 일대에서 무사들을 선발하여 훈련시켰다고 하여 연융대(鍊戎臺)라 부르기도 하였다.

신영동 136-9(도로명주소 없음)

228

종로146

종로구

2001

통례원 터
通禮院址
Site of Tongnyewon Government Office

통례원은 조선시대에 조정의 의례와 하례, 제사와 의식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각문(閣門)이라 하였다가 1466년(세조 12) 통례원으로 바뀌었으며 1895년(고종 32) 장례원(掌禮院)으로 바뀌었다.

돈화문로 93(와룡동 139)

229

종로147

종로구

1994

평창 터
平倉址

조선후기 서울 북쪽의 방어를 위한 총융청(摠戎廳)의 군량창고가 있던 곳

평창11길 9-1(평창동 329-2)

230

종로148

종로구

2011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韓國 天主敎會創立址

1784(정조 8년) 겨울, 수표교 부근 이벽(李檗, 1754~1785)의 집이던 이곳이 세례식이 최초로 거행되어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터이다. 

청계천로 105(관수동152-1)

231

종로149

종로구

2019

한남서림 터
翰南書林址
The site of Hannamseorim(bookstoore)

한남서림은 고서적 전문서점으로 1910년경 문을 열었으며
 1936년 전형필에게 인수되었다. 전형필은 한남서림을
거점으로 삼아 국외로 유출될 위기에 놓인 많은 민족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관훈동 18번지

232

종로150

종로구

2001

한성도서주식회사 터
漢城圖書株式會社址
Site of Hanseong Publishing Company

한성도서주식회사(대표이사: 이봉하, 이사: 이종준, 한규상, 박태련, 장도빈)는 민족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한 출판사로서 1920년 창설되어 1957년까지 존속하였다. 주요 출판물로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 심훈의 『상록수』 등이 있다.

우정국로 65(견지동 30)

233

종로151

종로구

1998

한성부 동부관아 터
漢城府東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동쪽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창경궁로 106(인의동 48-26)

234

종로152

종로구

1998

한성부 북부관아 터
漢城府北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북쪽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삼청로 20-1(사간동 70)

235

종로153

종로구

1998

한성부 중부관아 터
漢城府中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중부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종로 154-1(종로3가 171)

236

종로154

종로구

2003

한성전보총국 터
漢城電報總局址
Site of Hanseong Telegram Service

이 곳은 조선 고종 22년(1885년) 조청전선조약(朝淸電線條約)을 체결한 후 조선과 청과의 사이를 연결한 서로전선(西路電線)을 운영하기 위해서 세운 한성전보총국이 있었던 자리이다.

세종대로 175(세종로동 81-3)

237

종로155

종로구

2006

한양의원 터
漢陽醫院址
Hangyang Infirmary Site

우리나라 근대 초창기의 양의로 한성의사회 회장과 조선의사협회 초대 간사장을 역임한 박계양(朴啓陽)이 운영하던 병원터. 홍명희, 정인보, 최남선과 같은 명사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수표교로 118 (낙원동 146)

238

종로156

종로구

2001

현진건 집터
玄鎭健家址
 Former Site of Hyeon jin-geon's House

현진건(1900-1943)은 근대 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자전적 소설과 민족적 현실 및 하층민에 대한 소설, 역사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암동 325-2(도로명주소 없음)

239

종로157

종로구

1998

혜정교 터
惠政橋址

중학천(中學川) 위에 놓였던 다리로 복청교(福淸橋)라고도 하며,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기도 하였음

종로1 (종로1가1)

240

종로158

종로구

2000

화기도감 터
火器都監址

조선시대에 총포를 만들었던 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총(鳥銃)을 사용하여 아군이 크게 고전하였으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조총청(鳥銃廳)을 만들어 총포를 제작하였고, 그 후 북쪽의 여진(女眞)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총청을 화기도감으로 개편하였다.

북촌로5길 48(화동 2)

241

종로159

종로구

2005

황성신문 터
皇城新聞址
Site of the Office of Hwangseong Sinmun(Newspaper)

황성신문은 1898년 남궁억 등이 창간한 국한문 혼용의 애국계몽 일간지로서 국권을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장지연이'시일야방성대곡'이란 통분 논설을 게재하였다가 정간 당하였다.

청계천로41(서린동33)

242

종로160

종로구

1992

훈련도감 터
訓鍊都監址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의 삼수병(三手兵)을 관할하던 군영 터

새문안로 75(신문로1가 57)

243

종로161

종로구

2005

흥덕사 터
興德寺址
Site of Heungdeoksa(Temple)

이 부근은 조선 태조가 태종1년(1401년)에 옛집 일대를 희사해서 흥덕사를 창건한 곳이다. 그 후 세종때 불교를 선교(禪敎) 두 종파로 통폐합 할 때 교종의 도회소가 되는 등 불교사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연산군 때 폐사된 후 흔적조차 없어졌다.

성균관로17길 18(명륜동1가 2-13)

244

종로162

종로구

1988

흥화문 터
興化門址

경희궁(慶熙宮) 정문인 흥화문의 원래 자리

새문안로 69(신문로1가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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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