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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심씨(靑松 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유명하신 선현들의 묘소, 생가 등 아직까지 미쳐 답사하지 못한 곳은 미답지를 기록하여 항상 차에 두고 다니다가 인근에 풍수컨설팅을 가든지, 다른 일이 있어 찾을 때는 미답지를 답사하곤 한다.
작년에 김제에 특강 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남아 익산 주위에 있는 묘소들을 둘러보고 왔다. 그중에 청송심씨 2세조 심연의 묘를 찾았다.
심연의 묘는 익산 함열의 남당산(南堂山) 아래에 있다. 이곳은 평양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들판이 늘어선 곳에 작은 산이 있어 '한치만 높아도 산(高一寸爲山)'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곳이다.
묘 뒤 현무봉은 남당산이며 나지막하게 주변을 감싸주고 있는 형태가 멋져 보인다. 좌우 용호도 평양지에서는 논둑, 밭둑을 용호로 활용하는데 이곳은 야산이라서 어느 정도는 윤곽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조안산은 혈처를 품에 안 듯 잘 받아주고 있다. 물길은 좌선수로 계축(癸丑)으로 나가고 있다. 향(向)은 손좌건향(巽坐乾向)으로 보인다. 88향법으로 보면 법수에 맞게 쓴 것은 아니다.
급한 발걸음으로 현무정을 오르지는 못하고 바로 돌아왔는데 한 눈에 봐도 포근한 혈처를 느낄 수 있으며, 물길 또한 조래수가 모여 넉넉한 재물을 약속하는 곳이다.
청송 심씨(靑松 沈氏)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했다. 4세 심덕부(沈德符)가 고려 우왕 때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서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고, 조선이 개국되자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되었으며, 1399년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렀다. 반면 심덕부의 아우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심덕부의 아들 7형제 대에서 가세가 크게 융성하였는데, 다섯째 아들 심온(沈溫)이 세종의 국구(國舅)로서 영의정을 지냈고, 여섯째 심종(沈淙)은 태조(太祖)의 부마로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심온(沈溫)의 둘째 아들 심회(沈澮)도 세조 때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였다. 심회(沈澮)의 증손인 심연원(沈連源)도 명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심연원(沈連源)의 아들 심강(沈鋼)도 명종의 국구(國舅)로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심강(沈鋼)의 손자 심열(沈悅)은 인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 심열(沈悅)의 현손 심호(沈浩)도 경종의 국구(國舅)로서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에 봉해졌다.<위키백과에서 인용> 제1세 시조 심홍부(沈弘孚) 심홍부(沈弘孚)[?~?]는 고려 후기 청송 출신의 문신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하였으며 청송심씨의 시조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이칭은 심홍부(沈洪孚). 심홍부의 아들은 합문지후(閤門祗候)를 역임한 심연(沈淵), 손자는 전리정랑(典理正郎)을 지낸 심용(沈龍)이다. 증손자는 조선 건국공신이며 좌의정을 지낸 심덕부(沈德符)와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내고 고려가 멸망하자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으로 들어간 심원부(沈元符)가 있다. 심홍부는 고려 충렬왕대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보광산에 묘소가 있다. 심홍부의 증손인 심덕부가 1392년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공신으로 공을 세우고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청성충의백(靑城忠義伯)에 진봉되어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디지털청송문화대전에서 인용> 제2세조 심연(沈淵) 심연은 심홍부(沈弘孚)의 아들로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행적도 알려진 것이 없지만 합문 소속의 종6품 지후 벼슬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는 200년 이상 실전(失傳)되었다가 1705년 찾았는데, 심연의 묘와 부인의 묘는 사각형태 상하장(上下葬)으로 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실전(失傳)된 연유로 상하의 묘중 어느 것이 심연의 묘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비석은 위쪽 묘에 세워져 있고 지세를 고려하고 혈장을 분석해 보건데 위쪽이 심연의 묘로 추정된다. 심연의 묘는 후손 심규(沈圭)에 의해 찾아졌는데 그의 묘비에 기록이 나와있다. 심규(1684년(숙종 10)∼1755년(영조 31))는 자는 서중(瑞中)이고, 호는 죽계(竹溪)이다. 출신지는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나포면(羅浦面) 부곡리(富谷里)이다. 영의정(領議政) 안효공(安孝公) 심온(沈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심정구(沈廷龜)이다. 타고난 성품은 어질어 효행이 돈독하고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높았다.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함열읍(咸悅邑) 남당산(南堂山)에 있는 청송심씨 2대조인 심연(沈淵)의 묘가 실전되었는데, 그것이 마을 사람들이 마음대로 점거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옥구(沃溝) 과거 시험장에서 김린(金璘)을 통해 둗고 10년 동안 송사를 하여 소유권을 되찾았다. 이는 심규의 비지(碑誌)에 기록되어 있다. 50세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서는 여묘살이를 하며 아침저녁으로 성묘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도(道)에서 그의 효행을 천거하여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미지정 |
문화재명칭 | 청송 심씨(靑松 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
소재지 | 전북 익산시 함열읍 남당리 산 64-1 |
관리자(연락처) | 청송 심씨(靑松 沈氏) 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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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모재에서 입구에서 바라본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용맥도... 남당산 아래 손좌건향(巽坐乾向)으로 놓여있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등고선 지도를 통해 용맥, 조안산을 좀 더 살펴본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손좌건향(巽坐乾向), 계축(癸丑) 파(破)로 88향법으로 보면 법수에 맞게 쓴 것은 아니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위성사진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원경... 현무정이 남당산으로 아름답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영모재
▼ 묘역에는 새로 비석을 세우고 영모재 안쪽에 옛날 비석을 남겨 놓았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앞쪽이 배위 묘로 추정된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비석이 세워져 있고 혈장이 길쭉하며, 평지룡은 물을 주의해야 하므로 좌우 용호와 맞게 위쪽이 심연선생 묘로 추정한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비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입수도두... 입수룡을 밟고 오르지는 못하였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후경... 조안산 순서가 있고, 명당을 잘 감싸주고 있어서 포근하다. 앞쪽 안산이 조금 배를 내민것으로 보아 여인들 목소리가 조금 크다고 볼 수 있다.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 측경...
▼ 청송심씨(靑松沈氏) 제2세조 심연(沈淵) 묘에서 바라본 재실 영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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