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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趙芝薰) 묘
<박목월 묘를 포스팅하면서 블로그에 있던 조지훈, 박두진 묘 답사기를 이곳으로 옮겨옵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묘가 마석에 있다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매번 시간에 쫒겨 찾지 못하다가 마침 마석에 일이 있어 가는 길에 무조건 지훈 묘를 찾을 샘으로 방향을 국도로 틀었다. 마침 평일이라 차를 가지고 가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이곳 묘역을 찾으려면 아래에서 올라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제가 여러 방향으로 답사한 결과 묘역 뒤에서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운치도 있고 묘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듯하여 찾아가는 방법을 상세히 올리도록 하겠다.조지훈 묘역에는 어머니 전주류씨 묘와 함께 상하분으로 있다. 남향이라 아주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큰 무리가 없는듯 보이는 곳인데 막상 묘역을 오르면 봉분에 이끼가 가득하다. 수분이 묘역을 감고 있다는 뜻이다.용맥은 천마산에 출발하여 송라산(497.6m)을 거쳐 현무봉(180고지)에 이르고 과협을 한 후 조치훈 묘역으로 들어오는데 낮은 산 정상부위에 등을 기대고 묘를 썼다.일견 상당히 좋은 터로 보이지만 마석역 쪽이 허하고 혈처 아래로 경사가 심하여 기운이 머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끝부분이 청룡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도 주맥보다는 호종사의 격에 어울리는 곳이다. 문화재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향토문화재로라도 지정해서 묘역이 침범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묘역 근처까지 주택이 들어설것으로 보인다. 한편 풍수적으로 본다면 현재 나대지로 있는 곳에 조만간 아파트가 들어설 모양인데 오히려 아파트가 제대로 앞을 막아준다면 기운이 머무를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조지훈(趙芝薰:1920.12.3 ~ 1968.5.17) 본관은 한양(漢陽). 본명은 조동탁(趙東卓).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신. 아버지는 조헌영(趙憲泳)이며, 어머니는 전주 류씨(全州柳氏)이다. 4남매 중 둘째 아들이다.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운 뒤 보통학교 3년을 수학하고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에 앞서 20세에 안동 출신의 김난희(金蘭姬)와 혼인하였다.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고, 불경과 당시(唐詩)를 탐독하였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에 전국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만년에는 시작(詩作)보다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이 사업을 추진하였다.작품 활동은 1939년 4월『문장(文章)』지에 시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39년 11월「승무(僧舞)」, 1940년에 「봉황수(鳳凰愁)」를 발표함으로써 추천이 완료되었다. 이 추천 작품들은 한국의 역사적 연면성(連綿性)을 의식하고 고전적인 미의 세계를 찬양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풍의상」에서는 전아한 한국의 여인상을 표현하였고, 「승무」에서는 승무의 동작과 분위기가 융합된 고전적인 경지를 노래하였다.「봉황수」에서는 주권 상실의 슬픔과 민족의 역사적 연속성이 중단됨을 고지(告知)시키고 있다. 조지훈의 작품 경향은 『청록집(靑鹿集)』(1946)·『풀잎단장(斷章)』(1952)·『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1956)의 작품들과 『역사앞에서』(1957)의 작품들로 대별된다.박목월(朴木月)·박두진(朴斗鎭)과 더불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고전적인 전아한 미의 세계에 대한 찬양과 아울러 ‘선취(禪趣)’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고사(古寺) 1」·「고사 2」·「낙화(落花)」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이들 시편에 담긴 불교적 인간 의식은 사상적으로 심화되지 않았으나, 유교적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인식 및 삶의 융합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풀잎단장』과 『조지훈시선』은 『청록집』에서 보인 전통지향적 시세계를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역사앞에서』는 일대 시적 전환을 보이고 있는데, 종래의 『청록집』 등에서 나타난 시세계와는 달리 현실에 대응하는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광복 당시의 격심한 사상적 분열 현상과 국토의 양분화 현실 및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의 분노를 표현한 작품으로는 「역사앞에서」·「다부원(多富院)에서」·「패강무정(浿江無情)」 들이 있다.특히, 「다부원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로서 동족상잔의 비극적 국면이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 기타 저서로는 시집 『여운(餘韻)』(1964)과 수상록 『창에 기대어』(1956), 시론집 『시의 원리』(1959), 수필집 『시와 인생』(1959), 번역서 『채근담(菜根譚)』(1959) 등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청록파시인 박두진 묘 바로가기
청록파시인 박목월 묘 바로가기
문화재지정 | 미지정 |
문화재명칭 | 조지훈 묘 |
소재지 |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222-9(마석우리 219-26에 주차) |
관리자(연락처) | 한양조씨 |
▼ 시인 조지훈 묘... 뒤에 어머니 전주류씨 묘가 보인다...
▼ 시인 조지훈 묘 용맥도
▼ 시인 조지훈 묘 전경
▼ 시인 조지훈 묘 찾아가는 방법은 묘역 뒤에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운치도 있고 수월하다.
▼ 시인 조지훈 묘 가는 길...
▼ 시인 조지훈 묘 가기위해 주차한 후 출발하여 산을 조금 오르면 만나는 분기점... 바위가 예사롭지 않다.
▼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돌면 능선이 이어진다.
▼ 시인 조지훈 묘 입수도두에 세워놓은 승무 시...
▼ 시인 조지훈 묘 뒤에서 들어가면 후경을 먼저 만난다.
▼ 시인 조지훈 묘 전경... 햇빛이 아주 밝게 비춘다.
▼ 시인 조지훈 묘... 묘비, 상석, 망주석으로 꾸며져 있다.
▼ 시인 조지훈 묘 근경...
▼ 시인 조지훈 묘비...
▼ 시인 조지훈 묘비 정면, 측면, 후면...
▼ 시인 조지훈 묘 망주석...
▼ 시인 조지훈 묘 측경...
▼ 시인 조지훈 묘 석물...
▼ 시인 조지훈 묘와 어머니 전주류씨 묘...
▼ 시인 조지훈 묘 후경... 묘 봉분에 이끼가 가득하다.
▼ 시인 조지훈 묘 후경... 전체적으로 봉분으 흙이 푸석하여 흘러내린다.
▼ 시인 조지훈 어머니 전주류씨...
▼ 시인 조지훈 어머니 묘에서 바라본 후경... 어머니 묘 봉분도 이끼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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