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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 답사를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나 발품을 팔아서 다니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안 생기는데 자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먼저 주차할 장소를 물색한 후에 답사를 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잠깐만 세워 놓아도 주변에 cctv가 많다보니 딱지가 날아오기 십상이다. 

송파 나루터(松坡津址)는 대로변에 있어서 차량으로 진입할 때는 불가능하다. 주변에 어디 주차할 데를 찾아 한 두 바퀴 돌아봐도 마땅한 데가 없어서 멀리 세워 놓고 찾아간 기억이 난다. 이곳은 그냥 찾아가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석촌호수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밖으로 나와서 정자도 보고 나루터 표석도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부근에는 제가 진행하는 풍수문화답사 코스에 포함되어 삼전도비, 송파나루터, 삼전 나루터, 백제고분 등을 묶어 진행 하고 있다. 봄에 벚꽃 필 때와 가을 단풍이 무르익을 때 찾으면 좋은데 그때는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용한 곳을 원하는 사람은 이 시기를 피하면 호수를 바라보면서 사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이 부근에서 가장 큰 나루터는 삼전 나루터였는데 병자호란 이후 기피 경향이 있고 물살이 너무 세서 송파나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샛강도 매립되고 석촌호수만 남아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 송파나루(松坡)


본래 이곳은 서울의 외곽을 지키는 송파진(松坡鎭)이 있어 별장(別將)이 다스렸는데, 별장은 송파나루 외에도 삼전도(三田渡)·동잠실(東蠶室)·광진(廣津)·독음(禿音) 등의 나루터를 함께 관할하였다.

이곳은 서울과 광주(廣州)를 잇는 중요한 나루터로 땔나무와 담배 등을 서울에 공급하였다. 송파는 나루터보다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컸다. 조선 시대에 이곳에는 270여 호의 객주집이 있어 전국의 10대 상설 시장 중의 하나로 번성하였다.

이는 서울 주변의 일반 상인들이 시전상인(市廛商人)들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피하기 위하여 삼남 지방이나 관동 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을 이곳에서 미리 사들여 도가상업(都家商業)의 근거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피해를 받는 시전 상인의 항의가 있었으나 광주유수(廣州留守)가 이를 막아 송파 시장은 계속 유지되었다.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와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송파의 시장 기능은 쇠퇴하였다.

나루터의 기능은 1960년대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항되어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 강남 지역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샛강의 매립과 교량의 건설로 나루터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7마당 9거리로 구성된 「송파산대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는 200여 년 전 이곳 시장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한강 유역의 비옥한 퇴적평야 지대로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알려진 곳이다. 몽촌고분군(夢村古墳群)과 백제의 토성이 남아 있으며, 올림픽 경기장의 일부가 형성되어 있다. 부근의 가락동 시장은 옛날 송파 시장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석촌호수 동호(東湖)가 이곳이 나루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송파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 송파(松坡)의 유래(由來) 비(碑)... 88올림픽 이후에 세워진 비석이다.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송호정 앞에 있다.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 송파 나루터(松坡津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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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