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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년(눌지왕 2)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 한다. 직지사라고 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가 절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고 하였다는 설, 선종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1596년(선조 29) 왜병들이 불을 질러 43동의 건물 가운데 천불전(千佛殿)·천왕문(天王門)·자하문(紫霞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이때 법당 앞에 있던 대형 5층목탑도 함께 소실되었다.
직지사는 평지의 절로써 맑은 물이 절을 감싸고 돌고 있으며, 유서 깊은 역사를 보유하고 있고, 주변 산들이 둥글둥글 맺혀 사찰의 재정은 넉넉하리라 보는데 귀(貴)는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듯 보인다.
특히 직지사는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당이 이 절에서 출가하여 후에 동화사에서 승병활동을 한 사명대사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명각을 지어 그의 뜻을 되새기고 있다.
대부분의 직지사 건물은 현대에 이르러 중수하였다.
비로전은 천불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들 천불상 가운데에는 나아상(裸兒像)이 있는데, 첫 눈에 이 나아상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한번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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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성보박물관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개방을 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직지사에서 수장하고 있는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桃李寺 世尊舍利塔 金銅舍利器: 국보 208호)는 전시를 하지 않아 아쉽게도 관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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