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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로구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도 궁궐이 밀집되어 있고 각 관청과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곳이어서 역사문화유적지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따라서 기념표석 또한 가장 많을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기념표석이 가까운 거리에 다수가 밀집되어 있어서 관심있는 분들이 답사를 하실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현황은 별도의 관리번호가 없이 표석명으로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려다보니 여러가지로 불편한게 많아서 임의로 구청별, 표석명의 가나다 순으로 임의로 관리번호를 부가하여 편리하도록 했는데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종로구 설치현황(1)

<웹사이즈로 올렸더니 글자가 너무 작아져서 넓게 올렸으니 웹으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양해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표석 종로구 설치현황('20.02.20 현재)(1/2)

총괄 순서

구청별순서

구청별

설치연도

표석명

표석내용

표석위치

83

종로 1

종로구

1991

 “한성정부” 유적지
“漢城政府” 遺跡地
1919년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를 열기로 하고, 그 취지서를 준비한 곳 사직로 121(내자동 61-1)

84

종로 2

종로구

1993

3․1독립운동기념터; 보신각앞 (獨立運動紀念址)(普信閣) 1919년 3·1독립만세 시위의 중심지로 4.23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漢城政府)를 선포한 곳. 종로 54(관철동 45-5)

85

종로 3

종로구

1993

3․1독립운동기념터; 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중앙학림 학생들과 전국 불교인들의 시위 계획을 논의하던 곳. 성균관로17길 22(명륜동 1가 2-12)

86

종로 4

종로구

1993

3․1독립운동기념터;
종로 YMCA
(獨立運動紀念址)
이 기독청년회관(YMCA)은 민족운동의 본거지로써 3·1독립운동을 준비하였던 곳.  종로 69 (종로2가 9)

87

종로 5

종로구

1996

3․1운동 유적지 : 상춘원 터  (三․一運動 遺跡地 : 常春園址) 일제 강점기 천도교 소유의 상춘원(常春園)이 있던 곳, 1919년 1월 손병희(孫秉熙)를 비롯한 천도교 지도부가 이곳에서 3․1운동을 계획했다. 종로 371(숭인동 72-13)

88

종로 6

종로구

1993

3․1운동 유적지 : 유심사 터
 (三․一運動 遺跡地) (惟心社址)
3.1운동 당시 불교 잡지『유심』 을 발행하던 출판사가 있던 곳.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선생이 이곳에서 불교계의 3.1운동 참여를 주도하였다. 계동길92-3 (계동 43)

89

종로 7

종로구

1991

6·10 독립만세운동 선창 터
獨立萬歲運動先唱址
1926년 6월 10일 순종(純宗)의 국장행렬이 통과할 때 중앙고보생(中央高普生) 이선호(李先鎬) 등이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先唱)하였던 자리 돈화문로 27(묘동204-1)

90

종로 8

종로구

2001

감고당 터
感古堂址
Site of Gamgodang House
감고당은 숙종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1667~1701)가 1689년 왕비 지위를 잃고 궁에서 나와 살던 집이다. 1761년 영조의 친필 편액을 달았다. 2006년 경기도 여주시로 이전 중건되었다. 율곡로3길 50(안국동 37-1)

91

종로 9

종로구

2015

개천절 행사 발상지
開天節 行事 發祥地 
1909년 대종교에서 음력 10월 3일을 환웅이 지상에 내려왔다 하여 개천절로 정하고 이곳에서 첫 행사를 치렀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창덕궁길 29(원서동 181)

92

종로 10

종로구

1987

경기감영 터
京畿監營址
Site of Gyeonggigamyeong Provincial Office
경기감영은 경기 일대의 군영을 총괄하던 관청으로 책임자는 경기감사였다. 세조 연간부터 1896년 수원으로 옮겨 갈 때까지 이곳에 있었다. 새문안로 3(평동 213)

93

종로11

종로구

2005

경성궤도회사 터
京城軌道址
Site of Gyeongseong Electric Railway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뚝섬과 광나루까지 경성 궤도회사가 경영하던 궤도전차가 운행하던 시발지. 이 협궤전차는 승객 및 물자 수송, 교외 나들이의 중요한 교통시설이었다. 종로 286(창신동 444-4)

94

종로12

종로구

2018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터
京城女子醫學專門學校 址
Gyeongseong Girls’ College of Medicine / Keijo Women’s Medical College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조선(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모체로 1938년 설립된 최초의 여성의학전문학교이다.
많은 여의사를 배출했으며 1948년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명륜2가 4번지

95

종로13

종로구

1992

경시서 터
京市署址
조선시대 물가를 조정하고 상거래(商去來)를 감독하던 관아터. 종로구 견지동에서 이전해 왔다. 수표로150(종로2가 40)

96

종로14

종로구

2001

경우궁 터
景祐宮址
Site of Gyeongugung Shrine
경우궁은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순조 24) 설치되었고 1886년(고종 23) 인왕산의 자수궁 터로 옮겼다. 계동 140-2(도로명주소 없음)

97

종로15

종로구

2000

계동궁 터
桂洞宮址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조카이자 고종의 사촌형인 이재원(李載元 1831~1891)이 살던 집터이다. 조선 초기에는 이 근처에 제생원(濟生院)과 승문원(承文院)이 있었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고종이 잠시 이곳으로 피신한 바도 있었다. 율곡로 75(계동 140-2)

98

종로16

종로구

2000

관상감 터
觀象監址
조선시대에 천문, 지리, 역수(曆數)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관아의 터. 고려시대의 서운관(書雲觀)을 세종대에 관상감으로 개편하였고, 측우기·물시계·해시계의 발명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1907년에 폐지되었다.  율곡로 83(원서동 219)

99

종로17

종로구

1988

권율 도원수 집터
權慄都元帥家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幸州大捷)을 거둔 도원수 권율(1537~1599) 장군 집터 사직로2길 14(행촌동 1-64)

100

종로18

종로구

2001

금위영 서영 터
禁衛營西營址
Site of the Western Camp of the Capital Garrison
금위영 서영은 조선시대에 도성 삼군문(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의 하나인 금위영의 분영이다. 금위영은 1682년(숙종 8)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설치된 군영으로 1895년(고종 32) 폐지되었다. 창덕궁길 49 (원서동 129-5)

101

종로19

종로구

1990

금위영 터
禁衛營址
임진왜란 이후에 설치된 오군영(五軍營)의 하나인 군영 터. 대궐의 경비와 서울 남쪽의 수비를 맡았는데 광복 후에 국립 국악원이 있었다.  율곡로 88(운니동 98-5)

102

종로20

종로구

2004

기당 현상윤선생 집터
幾堂玄相允先生家址
Former Site of Hyeon Sangyun's House
현상윤(1893~?)은 이광수·최남선 등과 함께 신문학운동을 일으킨 문학가이자 3·1운동을 주도한 독립 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이다. 이곳에서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 조선사상사(朝鮮思想史) 등을 저술하였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북촌로 98(가회동 1-35)

103

종로21

종로구

2001

김가진 집터
金嘉鎭家址
Site of Kim Kajin’s House
애국계몽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김가진(1846~1922)이 살던 집터이다. 188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주일본 판사대신, 군국기무처 회의원, 독립협회 위원, 대한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하이에서 병사하였다. 자하문로19-1(체부동 37-1)

104

종로22

종로구

2015

김경천 집터
金擎天
김경천(1888~1942)은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면서 ‘백마 탄 장군’, ‘진짜 김일성’ 등으로 불렸다. 1911년부터 1919년 만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사직로8길 4(사직동 9-1)

105

종로23

종로구

1988

김상옥 의거 터
金相玉義擧址
Site of Kim Sangohk’s Patriotic Deed
김상옥(1890~1923)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12일 이곳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일본 경찰과 격전을 벌이다 그달 22일 효제동에서 순국하였다. 종로65 (종로 2가 8-4)

106

종로24

종로구

1999

김상용 집터
金尙容家址
Site of Kim Sangyong’s House
조선 16대 임금 인조 때 재상을 지낸 김상용(1561~1637)이 살던 집터이다. 병자호란 때 임금의 친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글씨가 뛰어났으며, 시조로 ‘오륜가(五倫歌)’가 유명하다. 자하문로33길 22-8(청운동 52-1)

107

종로25

종로구

1992

김상헌 집터
金尙憲家址
이 일대는 병자호란 당시 화의(和議)를 반대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집이 있던 곳으로, 그 후 안동(安東) 김씨가의 세거지(勢居地)가 되었다.  궁정동 17-4(도로명주소 없음)

108

종로26

종로구

2004

김수영 생가 터
金洙暎生家址
Site of Kim Suyoung’s Birthplace
이곳은 시인 김수영(1921~1968)이 태어난 곳이다. 그는 처음 연극을 하다가 1946년 잡지『예술부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년), 시 「거대한 뿌리」(1964년) 등이 있다. 종로94(종로 2가 56-23)

109

종로27

종로구

1992

김옥균 집터
金玉均家址
조선말 개화파의 지도자인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이 거처하며 갑신정변을 논의하던 집 터(종로구 화동 260번지) 북촌로5길 48(화동 2)

110

종로28

종로구

1987

김정희 본가 터
金正喜 本家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조선 말기의 이름 높은 학자이자 서예가, 화가이다. 이곳은 그의 증조부모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과 화순옹주(和順翁主) 때부터 경주 김씨 본가가 있던 터이다. 효자로 3(적선동 1)

111

종로29

종로구

2007

김창숙(金昌淑) 선생 집터
Original site of Kim Chang-Sook's House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이 광복 후 살 던 집터이다. 선생은 3·1운동 직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파리장서(巴里長書) 제출을 주도하였으며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에 선임되었다. 창경궁로27길 66-8(명륜동3가 86-1)

112

종로30

종로구

1998

남이장군 집터
南怡將軍址
조선조 세조 때 북방개척에 무공(武功)을 세워 이름을 떨쳤던 남이장군의 집터 대학로 79-1 (연건동 72-24)

113

종로31

종로구

2000

내수사 터
內需司址
조선시대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관아의 터. 궁중에서 필요한 쌀, 옷감, 잡화, 노비 등에 관한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으며 1907년에 폐지되었다. 사직로8길 34(내수동 72)

114

종로32

종로구

2000

내자시 터
內資寺址
조선시대 궁중의 쌀, 채소, 과일 등 생필품을 공급하고 연회 등을 관장하던 관청인 내자시(內資寺) 터 사직로106(내자동141-2)

115

종로33

종로구

1999

노백린 집터
盧伯麟家址
Site of Roh Baekrin’s House
대한제국 고위 장교 출신 독립운동가인 노백린(1875~1926)이 1907년부터 망명할 때까지 살던 집터이다. 대한제국 시절 헌병대장, 육군연성학교장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군무총장,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창덕궁길 164(계동 1)

116

종로34

종로구

2015

대종교 중광 터
大倧敎 重光
대종교는 단군을 섬기는 민족종교이다. 1909년 음력 1월 15일 나철, 오기호 등이 이곳에서 단군 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하면서 대종교의 재건(重光)을 선언하였다. 종로구 북촌로 70(가회동 10-3)

117

종로35

종로구

2007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Original site of the Korea Daily Newspaper Building Site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영국인 베델(Bethell)과 양기탁(梁起鐸)이 창간한 대한제국 말기의 대표적 항일 민족 언론이다. 이 후 중동학교가 이 곳에서 문을 열었다. 수송동 80-7(도로명주소 없음)

118

종로36

종로구

2018

대한적십자병원 터
大韓國赤十字病院 址
Korean Red Cross Hospital
1905년 대한적십자사 창설과 함께 개원한 병원이다.
고종의 칙령에 의해 빈민 구료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907년 대한의원에 통합되기까지 1만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종로구 효자로 39

119

종로37

종로구

2006

대한천일은행본점 터
大韓天一銀行本店址
Daehan Cheonil Bank Site
1899년에 창립한 민족계 근대은행으로 오늘날 우리은행의 전신이다. 창립 초기에는 대한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 고유의 회계법인 송도사개치부법을 사용하였다. 1906년 이후에는 일반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청계천로 57(관철동 43-11)

120

종로38

종로구

2001

도염서 터
都染署址
Site of Doyeonseo Office
도염서는 궁중에서 쓰이는 염료를 제조하고 직물을 염색하는 일을 주관하던 관청이다. 도염서는 육조의 하나인 공조 아래에 설치되었으며 세조 때에 모시, 비단, 가죽 등을 임금에게 바치는 일을 맡았던 제용감(濟用監)과 통합되었지만 이름과 기능은 그대로 유지되어 조선말까지 존재하였다.
Site of Doyeonseo Office
Doyeonseo was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manufacturing dyestuff and dyeing cloth used in palaces during the Joseon Dynasty.
세종대로 지하 189(세종로동 80-1)

121

종로39

종로구

2001

도정궁 터
都正宮址
Site of Dojeonggung Shrine
도정궁은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1559)의 사당이다. 도정궁 터에 있던 건물은 1977년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1979년 건국대학교로 이전되었다. 사직로7길1(사직동 261)

122

종로40

종로구

1995

독립선언문 배부 터
(獨立宣言文配付址)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천도교 대표 등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 배부하던 곳 삼일대로 457(경운동 88)

123

종로41

종로구

1993

독립운동 기념터
(3.1獨立運動紀念址) : 승동교회
3․1독립운동 거사(獨立運動擧事를  위해 학생대표(學生代表)들이 모의(謀議)하였던 곳. 인사동길7-1(인사동 137)

124

종로42

종로구

2001

돈녕부 터
敦寧府址
Site of Donnyeongbu Office
돈녕부는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들어갈 수 없는 종친과 왕의 외척과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던 관청이다. 고종 31년(1894)에는 돈녕원(敦寧院), 이후에는 귀족사(貴族司), 귀족원(貴族院) 등으로 개칭하였다. 광무 4년(1900) 다시 돈녕원으로 개칭하였다가 곧 폐지하였다.
Site of Donnyeongbu Office
During the Joseon Dynasty, Donnyeongbu, or the Office of Royal Connections, took care of the kings' relatives who were not officially recognized as royal family members, including their relatives on the mother's side.
삼일대로30길 21(낙원동 58-1)

125

종로43

종로구

1997

동망봉
東望峰
Dongmangbong Peak
동망봉은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의 명복(冥福)을 빌었던 곳이다. 영조 47년(1771)에 영조가 친히 동망봉(東望峰)이란 글자를 써서 이곳에 있는 바위에 새기게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이 되면서 바위가 깨어져나가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숭인동 58-586(도로명 주소 없음)

126

종로44

종로구

1989

동부학당 터
東部學堂址
Site of the Eastern District School
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의 중부·동부·서부·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다. 동부 창선방(彰善坊)이었던 이곳에 동부학당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율곡로283(종로6가 70-6)

127

종로45

종로구

2006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
東亞日報創刊社屋址
 Donga Ilbo Building Site
1920년 4월 민족언론을 표방하며 창간된 동아일보의 사옥터. 그에 앞서 1917년까지 기호학교와 그 후신인 중앙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고, 동아일보사가 1926년 광화문 신축사옥으로 이전한 뒤에는 중외일보의 사옥이 되었다. 화동 138-26(도로명주소 없음)

128

종로46

종로구

2002

등과정 터
登科亭址
Site of Deunggwajeong Archery Pavilion
등과정은 조선시대 무사들의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한 사정(射亭)이다. 사정이란 활터에 세운 정자를 말하는데, 등과정은 서울 서쪽 지역에 있는 다섯 군데 이름난 사정 가운데 하나였다. 갑오개혁 이래 궁술(弓術)이 폐지되면서 헐렸다. 사직로9길 15-32(사직동 산1-1)

129

종로47

종로구

1990

맹사성 집터
孟思誠家址
조선 초 세종 때 정승을 지낸 정맥리가 살던 집터. 그의 이름을 따서 맹감사현(峴), 맹현(孟峴)이라고 하며, 퇴청하면 이곳에서 피리를 불기를 즐겨했다. 북촌로11길 74(삼청동 35-119)

130

종로48

종로구

1994

민영환 집터
閔泳煥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이에 분격하여 자결한 충정공(忠正公) 민영환 집 터(조계사 경내)  우정국로 57(견지동 38-2)

131

종로49

종로구

1988

박규수 선생 집터
朴珪壽先生家址
조선조 말 근대화를 주장한 우의정(右議政) 환재(瓛齋) 박규수(1807~1876)선생 집터 북촌로 15(재동 83)

132

종로50

종로구

2004

박인환 선생 집터
朴寅煥家址
Site of Bak Inhwan's House
이 곳은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6~1956)이 1948년부터 1956년까지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였던 장소이다. 1955년에는 <박인환 시선집>을 냈으며 <목마와 숙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어 지기도 하였다. 종로 1(세종로동 116)

133

종로51

종로구

2001

백련사 터
白蓮社址
Site of Baengnyeonsa
백련사는 조선말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로 이름났던 김유근(1785~1840)의 집이다. 그는 대사헌, 예조판서, 병조판서, 판돈녕부사에까지 올랐던 당대의 세도가였다. 김유근은 이곳에 집을 마련한 후에 집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백련봉인 것을 감안하여 백련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Site of Baengnyeonsa
Baengnyeonsa was the house of Kim Yugeun(1785-1840), a famous poet, calligrapher, and painter of the Joseon Dynasty.
삼청로10길 13(삼청동 25-1)

134

종로52

종로구

2003

별기군훈련소 터
別技軍訓練所址
Former Site of Byeolgigun Army Training Camp
조선 말 고종 18년(1881)에 설치된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이 훈련받던 곳. 신식 군대의 육성 없이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양반 자제를 선발, 일본군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 중위를 초빙하여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 별기군은 초록색 군복을 입었다 해서 초록 군대라고도 했고, 왜별기(倭別技)라고도 불렀다.  평창문화로 50(평창동 235-2)

135

종로53

종로구

1993

보성사 터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비밀리에 인쇄한 천도교의 보성사가 있던 곳이다. 수송동 80-7(도로명주소 없음)

136

종로54

종로구

2001

봉상시 터
奉常寺址
Site of Bongsangsi Government Office
봉상시는 조선시대에 국가 제사를 관장하고, 시호를 제정하며, 적전(籍田)의 농사를 관리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고 1895년(고종 32) 봉상사(奉常司)로 바뀌었다. 새문안로3길 15(당주동 128-27)

137

종로55

종로구

2001

부침바위 터
付岩址
Site of Buchim Rock
부침바위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거나, 아들을 낳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소원을 빌었던 바위이다. 약 2m 높이의 이 바위 표면에는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자국이 있었는데, 여기에 돌을 대고 비벼서 돌이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자하문로 260(부암동 141-1)

138

종로56

종로구

1988

북평관 터
北平館址
이 언저리 동부 흥성방(東部 興盛坊)은 여진(女眞) 사신을 유숙시켰던 집 터 종로6가 20-2 

139

종로57

종로구

1991

비변사 터
備邊司址
조선시대 외적의 방어와 국가 최고 정책을 논의하던 관아 터. 중종때 창설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되었음. 와룡동 5-6(도로명주소 없음)

140

종로58

종로구

1991

사간원 터
司諫院址
조선시대 국왕의 잘못을 충고하여 정치를 바로잡던 관아 터 삼청로 22 (사간동 66)

141

종로59

종로구

2003

사도시 터
司導寺址
Former Site of Sadosi(Gov't Office)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醬) 등의 물건을 맡은 관청으로 태조1년(1392) 고려의 제도를 따라 요물고(料物庫)를 설치하였다. 태종1년(1401)에는 공정고(供正庫), 세종4년(1422)에는 도관서(導官暑), 세조 6년(1460) 사선서(司膳署)에 흡수되었다가 세조 13년(1467) 도관서를 다시 설치하였고 이후 사도시라 개칭되었으며 고종19년(1882)에 폐지되었다. 창덕궁길 19(원서동181)

142

종로60

종로구

2016

사동궁 터
寺洞宮址
Site of Sadonggung House
사동궁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李堈, 1877~1955)이 살던 집이다. 이강은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하려고 국외 망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한옥과 양옥이 여러 채 들어선 저택이었으나 2005년 최종 철거되었다. 인사동길11길 19(견지동 85-18)

143

종로61

종로구

2000

사복시 터
司僕寺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는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의 터. 궁중에는 내사복시, 도성에는 외사복시, 지방에는 목장을 두었다. 여기에 있던 외사복시는 1907년에 폐지되었다. 삼봉로43(수송동 146-2)

144

종로62

종로구

2001

사섬시 터
司贍寺址
Site of Saseomsi Government Office
사섬시는 조선시대에 저화(楮貨)를 만들고 공노비에게서 공포(貢布)를 받던 관청이다. 1401년(태종 1) 설치한 사섬서(司贍署)가 1460년(세조 6) 사섬시로 바뀌었다. 1705년(숙종 31) 호조의 사섬색(司贍色)에 합쳐졌다. 성균관로1길 6-3(명륜동3가 147-1)

145

종로63

종로구

1991

사역원 터
司譯院址
조선시대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을 맡아보던 관아터. 조선말에「한성전보총국」이 있었음. 세종대로 175(세종로동 81-3)

146

종로64

종로구

2001

사온서 터
司醞署址
Site of Saonseo Government Office
사온서는 조선시대에 궁중에 술과 감주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폐지되었다. 적선동 175(도로명주소 없음)

147

종로65

종로구

2002

사포서 터
司圃署址
Site of Saposeo Office
사포서(司圃胥)는 궁중의 채소밭과 과수원을 관리하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원래 북부 준수방(俊秀坊:종로구 통인동)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고종 19년(1882)에 폐지되었다. 종로5길 86(수송동104)

148

종로66

종로구

2003

서북학회 터
西北學會址
Formor Site of Seobukhakhoe(Academy)
서북학회는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에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하여 평안도·함경도·황해도민이 조직한 애국 계몽 단체였다. 1909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1910년에 강제 해산되었다. 그 후 이곳에는 한때 오성학교, 보성전문학교, 건국대학교 전신인 정치대학이 자리하였다. 삼일대로 443(경운동 47-17)

149

종로67

종로구

2001

서십자각 터
西十字閣址
Site of Seosipjagak Watchtower
서십자각은 경복궁 서쪽에 있던 망루이다. 원래 궁궐의 궁은 임금의 거처를 말하고, 궐은 출입문 좌우에 설치된 망루를 뜻한다. 1923년 전차부설 공사를 하면서 철거되었다. 효자로 12(세종로동 1-57)

150

종로68

종로구

1985

서울대학교 터 1946년 8월4일 국립 서울대학교로 발족, 1975년 3월 관악산(冠岳山) 기슭으로 이전되었다. 대학로104(동숭동 1-124)

151

종로69

종로구

1999

선공감 터
繕工監址
조선시대 토목과 영선(營繕)을 관장하던 관청인 선공감(繕工監)이 있던 자리 새문안로 92(신문로1가 163)

152

종로70

종로구

1986

성삼문 선생 살던 곳 태종 18년(1418) 태어나서 사육신의 한 분으로 세조 2년(1456) 순절한 성삼문(成三問)선생 살던 집이 이 부근(화동 23번지)에 있었다. 북촌로5길 48(화동 2)

153

종로71

종로구

1986

세종대왕 나신 곳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자하문로 41(통인동 119-1)

154

종로72

종로구

2001

세창서관 터
世昌書館址
Site of Sechangsoegwan Publishing Company
세창서관은 출판사 겸 서점으로 1920년대에 신태삼(申泰三)이 설립하였다. 주로 편지류, 창가집, 고소설류를 출판하였는데, 주요 출판물은 편지류인 『언문편지투(諺言便紙套)』, 창가집인 『모던서울창가집(唱歌集)』, 고소설인 『배비장전(裵裨將傳)』,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등이 있다. 종로 125(종로3가 18)

155

종로73

종로구

2001

소격서 터
昭格署址
Site of Sogyeokseo Government Office
소격서는 조선시대에 도교의 의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1396년(태조 5) 설치되었고 연산군 이후 여러 차례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없어졌다. 삼청로 66(소격동1-1)

156

종로74

종로구

1993

손병희 선생 집터
孫秉熙先生家址
House of Son Byeonghui
손병희(1861~1922) 선생은 구한말의 천도교(天道敎) 지도자이자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에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으며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북촌로 41(가회동 170-3)

157

종로75

종로구

2001

송석원 터
松石園址
Original site of Songseogwon
송석원은 인왕산 계곡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이곳에 정조 때 평민 시인 천수경이 시사(詩社)를 지어 송석원이라 하였고, 1914년 순정황후 윤씨의 백부 윤덕영도 프랑스풍 저택을 짓고 역시 송석원이라 하였다. 필운대로 61(옥인동 41)

158

종로76

종로구

2011

송진우 집터
宋鎭禹
고하(古下) 송진우(1890~1945)는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고 해방 직후에 한국민주당 수석 총무를 지냈다. 이곳은 그가 1920년대부터 서거할 때까지 살던 집터이다. 창덕궁길 117(원서동 74-1)

159

종로77

종로구

1995

송학선 의사 의거 터
宋學先義士義擧址
1926년 4월28일 순종의 승하에 울분한 송학선 의사가 금호문(金虎門)앞에서 조선총독을 살해하려던 자리 와룡동 5-6(도로명주소 없음) 

160

종로78

종로구

1993

수진측량학교 터
壽進測量學校址
개화사상가 유길준(兪吉濬)이 수진궁(壽進宮)을 빌려 측량전문교육기관(1908~1909)을 세웠던 곳. 삼봉로 43(수송동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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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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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로구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도 궁궐이 밀집되어 있고 각 관청과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곳이어서 역사문화유적지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따라서 기념표석 또한 가장 많을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기념표석이 가까운 거리에 다수가 밀집되어 있어서 관심있는 분들이 답사를 하실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현황은 별도의 관리번호가 없이 표석명으로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려다보니 여러가지로 불편한게 많아서 임의로 구청별, 표석명의 가나다 순으로 임의로 관리번호를 부가하여 편리하도록 했는데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종로구 설치현황(2)

<웹사이즈로 올렸더니 글자가 너무 작아져서 넓게 올렸으니 웹으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양해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표석 종로구 설치현황('20.02.20 현재)(2/2)

총괄 순서

구청별순서

구청별

설치연도

표석명

표석내용

표석위치

161

종로 79

종로구

1999

순화궁 터

헌종(憲宗)의 후궁인 경빈(慶嬪) 김씨(金在淸의딸)의 사당인 순화궁(順和宮)이 있었던 자리이다.

인사동5길 29 (인사동 194-27)

162

종로 80

종로구

2000

승문원 터
承文院址

조선시대에 외교 문서를 관장하던 관청의 터. 조선 건국 초에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로 설치되었다가 1410년(태종10)에 승문원으로 개편되었다. 처음에는 이곳 양덕방(陽德坊)에 있었으나 1443년(세종25) 이후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으로 옮겨 다니다가 1787년(정조11)에 이르러 다시 이곳으로 이전되었으며 1895년 을미개혁 때 폐지되었다.

창덕궁1길 41(계동140-55)

163

종로 81

종로구

2007

신간회(新幹會)본부 터 Original site of the Singan Society Heagquarters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민족협동전선으로 출범한 신간회가 1929년 이후 본부를 두었던 곳이다.

종로104(종로2가 55-1)

164

종로 82

종로구

2015

신교 터
新橋

신교는 청계천 발원인 백운동천(白雲洞川)의 상류에 있었던 돌다리이다. 영조의 후궁 영빈(暎嬪)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宣禧宮)을 인왕산 기슭에 지으면서 놓았다. 1920년대 백운동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필운대로 116(신교동 60)

165

종로 83

종로구

2011

신흥대학 터
新興大學址

일제 강점기 서간도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인 신흥대학이 1949년 3월 20일 정식 대학으로 인가받아 개교한 자리. 신흥대학은 1955년 회기동으로 이전하여 1960년 경희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수송동 80-7(수송공원내)

166

종로 84

종로구

2005

쌍홍문 터
雙紅門址
Site of Ssanghongmun Gate

쌍홍문은 조선 14대 임금 선조가 조원(趙瑗, 1544~1595)의 두 아들 희정(希正)과 희철(希哲)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내린 한 쌍의 정려문(旌閭門)이다. 효자동이라는 동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자하문로24길 51(효자동 172-1)

167

종로 85

종로구

1998

안동별궁 터
安洞別宮址

조선시대 초부터 왕실의 거처였다가 마지막 황제 순종의 가례(嘉禮)처로 사용되던 궁터

율곡로3길 4(안국동 175-2)

168

종로 86

종로구

2001

야주개
夜珠峴
Yajugae Ridge

야주개는 이곳 신문로와 당주동 경계에 있던 고개이다. 경희궁(慶熙宮)의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현판 글씨가 빛이 나서 밤에도 이 고개까지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문안로 91(신문로1가 24)

169

종로 87

종로구

2000

양현고 터
養賢庫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금을 담당하고 석전제(釋奠祭)의 비용을 조달하던 기관의 터. 세조 때에 철폐되어 풍저창(豊儲倉)에 귀속 되었으나 1483년(성종14) 유생들의 상소로 다시 양현고로 환원되어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성균관로 55(명륜동3가 2-1)

170

종로 88

종로구

2016

어니스트 베델 집터
裵說家址
Site of  Ernest Thomas Bethell’s House

1904년 조선에 온 영국인 베델(한국명 배설(裵說), 1872~1909)은 이해 7월『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창간하여 항일 언론활동을 힘껏 지원하였다. 이곳은 그가 조선에 와서 정착해 사망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산 한옥 터이다.
A native of England, Ernest Thomas Bethell(1872-1909) founded 『The Korea Daily News』in July 1904. He was a strong advocate of anti-Japanese journalistic activities in Korea. This is the site of hanok(Korean traditional house) in which Bethell and his family resided, from the time of his arrival in Korea, until his death.

홍파동 2-2(도로명주소 없음)

171

종로 89

종로구

1988

어영청 터
御營廳址

인의동 이 언저리는 왕실과 도성의 수비를 맡았던 군영(軍營) 터

창경궁로109(인의동 112-2)

172

종로 90

종로구

2001

어유구 집터
魚有龜家址
Site of Eo Yugu’s House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어유구(1675~1740)가 살던 집터이다. 한성부윤을 지낸 어윤형의 아들로 1699년(숙종 25) 과거에 급제한 후 정언, 수원부사, 병조참의, 대사간, 승지 등을 지냈다. 『긍재편록(兢齋編錄)』, 『농암사단칠정변(農巖四端七情辨)』을 지었다.

창경궁로 258(명륜동2가 21-26)

173

종로 91

종로구

2001

어의궁 터
於義宮址
Site of Eouigung House

어의궁은 조선 17대 임금 효종(1619~1659)이 왕자 시절에 살던 집이다. 숙종이 용흥구궁(龍興舊宮)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었다. 조선 후기에 왕실의 가례를 거행하던 대표적인 별궁이다.

대학로 39(효제동 22-3)

174

종로 92

종로구

2000

여단 터
濾祭壇
Site of Yeodan Altar

조선조 정종 2년 (1400)부터 자손 없이 죽은 사람들의 원혼(怨魂)을 제사 지냈던 단으로 1908년에 폐지 되었다.

평창동 113-1(도로명주소 없음)

175

종로 93

종로구

2005

여운형 집터
呂運亨家址
Site of  Yu Un-Hyeong's House

몽양 여운형(1886~1947)은 상해에서 1919년 4월 의정원 의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고, 1936년 조선중앙일보 사장 재직 시 손기정 사진에 일장기를 말소하였으며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활동하다가 암살당하였다.

창덕궁1가길 7(계동 140-10)

176

종로 94

종로구

2008

옥호정 터
玉壺亭址

순조의 장인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제택 (第宅)인 옥호정이 있던 곳이다. 전해오는 ‘옥호정도(玉壺亭圖)’에 그려진 ‘일관석(日觀石)’ 각자(刻字)바위가 현재 북악 동쪽 산 중턱에 남아 있다. 

삼청로 131-1(삼청동 127)

177

종로 95

종로구

2000

용동궁 터
龍洞宮址

조선조 명종의 장남 순회세자(順懷世子)가 책봉을 받았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나 세자빈의 속궁(屬宮)이 되었다. 조선말 경운궁(현 덕수궁) 부근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가 독일인 묄렌도르프에 하사되었으며 그 뒤 엄비의 소유로 변하여 숙명여학교가 설립, 운영되었다.

수송동 80-7(도로명주소 없음)

178

종로 96

종로구

1999

용성스님 거주터
龍城居住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으로 불교 혁신운동을 펼친 백용성(白龍城, 1864~1940)스님이 활동하던 곳

율곡로10길 87(봉익동 3)

179

종로 97

종로구

2003

우미관 터
優美館址
 Former Site of Umigwan(Cinema)

우미관은 우리 나라에 영화문화가 들어온 초창기인 1912년에 개관되어 단성사(團成社)·조선극장(朝鮮劇場)과 더불어 사랑받던 영화관이다. 2층 벽돌 건물로 수용 인원 1000명 정도의 큰 극장이었다.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였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오락물을 상영하였다. 이 극장은 광복 이후에도 이곳에 존속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된 후 1959년 옛 화신백화점 뒤로 이전하였다.

종로 84(종로2가 75-2)

180

종로 98

종로구

1995

우포도청 터
右捕盜廳址

포도청은 조선시대 도성 안팎의 치안과 순찰을 담당하였던 관청으로서 좌우 포도청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쪽 지역을 담당하였던 우포도청 자리.

종로 14(서린동 154-1)

181

종로 99

종로구

1991

원각사 터
圓覺社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극장 원각사가 있었던 곳. 1909년 이인직(李人稙 1882~1916)의 설중매, 은세계 등이 공연되었음.

새문안로 79(신문로1가 42)

182

종로100

종로구

1999

육군무관학교 터
陸軍武官學校址
Site of Military Academy

무관학교 관제에 따라 근대적 초급 장교를 양성하려고 1896년 1월 설립한 육군무관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육군무관학교는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유명무실해졌고 1909년 9월 군부(軍部)와 함께 폐지되었다.
This site is where the Military Academy of the Empire of Korea was established in 1896 to prepare and train junior officers.

새문안로3길 12(신문로1가238)

183

종로101

종로구

1991

육의전 터
六矣廛

육의전은 조선시대에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한 서울의 여섯 시전(市廛)을 말한다. 이곳은 육의전 중 으뜸인 선전(廛)이 있던 자리로 비단을 주로 취급하였다. 

종로 51(종로2가 6)

184

종로102

종로구

1987

의금부 터
義禁府址

조선조(朝鮮朝) 관리·양반 윤리에 관한 범죄를 담당하던 관아자리

종로 47(공평동 100)

185

종로103

종로구

2000

의영고 터
義盈庫址

호조에 소속되어 궁중에서 쓰이는 기름, 꿀, 채소 등의 물품출납을 맡아 보았던 관청의 터. 1392년(태조1)에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설치하였다. 태종대와 세조대의 관제 개편을 통해 직제가 정비되었으며, 1882년에 폐지되었다.

사직로8길 60(도렴동95-1)

186

종로104

종로구

2015

의학교 터
醫學校

의학교는 1899년 대한제국에서 김홍집의 집에 설립한 최초의 근대의학 교육기관이다. 졸업생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였다. 1907년 대한의원 교육부로 개편되었다.

율곡로 46(경운동 90-4)

187

종로105

종로구

1993

이동녕 주석 집터
李東寧主席家址

이곳(봉익동 50)은 임정(臨政)의 이동녕(1869~1940)주석이 1885년 이래 국외로 망명할 때까지 독립협회운동·을사조약 반대 신민회 운동을 폈던 곳.

종로 157(훈정동 1-2)

188

종로106

종로구

2001

이문 터
里門址
Site of lmun Guard Post

이문은 조선시대에 마을의 방범과 방재를 위해 서울의 주요 골목 입구마다 설치한 문이다. 문 위에 다락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번갈아 올라가 도둑과 화재를 살폈다.

종로 85-1(종로2가 22-2)

189

종로107

종로구

1995

이상재 집터
李商在家址
Site of Yi Sangjae's House

이상재(1850~1927)는 한말 및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정치가·사회운동가이다.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구성하여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고, 1927년에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좌·우익이 합작하여 만든 사회단체인 신간회(新幹會)의 초대회장이 되었다.

북촌로 15(재동 83)

190

종로108

종로구

1999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터

이언저리는 이이(李珥) 이율곡(1536 ~ 1564)선생이 살던 절골 집터 

인사동길 7-1(인사동 137)

191

종로109

종로구

2015

이정귀 집터
李廷龜

이정귀(1564~1635)는 인조대 좌의정을 지냈으며 문장과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 고조부 이석형(李石亨)이 성균관 남쪽에 자리 잡은 이후로 이정귀를 비롯한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살았다.

명륜동4가 1-2(도로명 주소 없음)

192

종로110

종로구

2017

이준 집터
李儁家址
Site of Yi Jun’s House

이준(1859~1907)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과 함께 특사로 파견될 때 살던 집이 있었다. 이준의 아내 이일정(李一貞)이 190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인상점(婦人商店)을 연 곳이기도 하다.

율곡로 53(안국동 148)

193

종로111

종로구

2000

이현궁 터
梨峴宮址
Site of Ihyeongung House

이현궁은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1575~1641)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인조 이후 행궁이나 왕족의 집, 군영(軍營) 등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로 112-7(인의동 28-9) 

194

종로112

종로구

2001

인평대군 집터
麟坪大君家址
Site of Prince Inpyeong’s House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1622~1658)이 살던 집터이다. 1865년(고종 2) 왕실에서 사용하는 관(棺)을 제작·보관하는 장생전(長生殿)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화장1가길 6(이화동 27-2)

195

종로113

종로구

2001

자수궁 터
慈壽宮址
Site of Jasugung House

자수궁은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芳蕃, 1381~1398)이 살던 집이다. 문종 때 세종 후궁들의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으며, 자수원이라고도 하였다.

필운대로 68(옥인동 45-1)

196

종로114

종로구

2001

장예원 터
掌隸院址
Site of Jangyewon Government Office

장예원은 조선시대에 노비 장부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고 1764년(영조 40) 형조에 소속되어 보민사(保民司)로 바뀌었다.

세종대로 169(세종로동 155-4)

197

종로115

종로구

2001

장원서 터
掌苑署址

궁궐의 후원과 각지의 과수원을 관리하고 궁중과 여러 관아에 과일과 화초 등을 공급하던 관아 터 

북촌로5나길 11(화동25-1)

198

종로116

종로구

2001

장흥고 터
長興庫址
Site of Jangheunggo Government Office

장흥고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관청에서 쓰이는 돗자리, 종이 등을 공급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고 1894년(고종 31) 궁내부로 편입되었다.

사직로8길 31(내자동 201-11)

199

종로117

종로구

1997

전옥서 터
典獄署址

조선시대에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한말 항일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곳

청계천로 41 (서린동 33)

200

종로118

종로구

1992

전의감 터
典醫監址

조선시대 궁중에 쓰이는 의약을 제조하고 약재를 재배하던 관아 터. 조선말에 우정총국(郵征總局)이 들어섰다. 

우정국로 59(견지동 39-7)

201

종로119

종로구

2005

전차 차고 터
電車車庫址
Site of Electric Car Shed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전차 종점으로 차고가 있던 곳. 또한 종로행이나 청량리 행 손님이 전차를 갈아타기도 하였다.

청계천로 279(종로6가 289-3)

202

종로120

종로구

1992

정도전 집터
鄭道傳家址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살던집 터. 후일 사복시(司僕寺)·제용감(濟用監)이 이 자리에 들어섰고 일제 때에는 수송국민학교(壽松國民學校)가 세워졌었다.

삼봉로 43(수송동 146-2)

203

종로121

종로구

1988

정철 선생 나신 곳
鄭澈生家址

이 언저리 장의동(壯義洞)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松江) 정철 선생(1536~1593)이 태어난 곳

자하문로 105(청운동 123)

204

종로122

종로구

1990

제생원 터
濟生院址

조선초의 서민 의료기관 터. 극빈자의 치료와 미아의 보호를 맡았으나 세조때 혜민서에 병합되었다. 조선조말엽 이 터에 계동궁(桂洞宮)이 들어섰다. 

율곡로 75(계동 140-2)

205

종로123

종로구

2000

제용감 터
濟用監址

조선시대 궁중의 모시, 마포 등 옷감의 직조와 의복의 제조·공급을 담당하던 관청인 제용감(濟用監) 터

종로1길50(중학동 19)

206

종로124

종로구

1990

제중원 터
濟衆院址

제중원은 1885(고종 22)년 알렌(Allen)의 제의에 따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산하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이다. 처음에는 광혜원(廣惠院)으로 이름 붙였다가 취소하고 제중원으로 하였다. 2년 뒤에 구리개(銅峴)로 옮겼다. 제중원 건물은 홍영식(洪英植)의 집이었다.

북촌로 15(재동 83)

207

종로125

종로구

1987

조광조(趙光祖)선생 살던 집터

정암(靜庵)조광조(1482-1519) 선생이 살던 한양골 집터(돈의동)

삼일대로 438(낙원동 9)

208

종로126

종로구

2002

조선건국동맹 터
朝鮮建國同盟址
Site of The Korean Indendence Alliance

조선건국동맹은 1944년 8월 10일 조국의 광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이다. 중심인물은 여운형, 조동호, 현우현, 황운, 이석구, 김진우 등이며, 산하조직으로 조선농민동맹을 두었다.

삼일대로461(경운동 89-4)

209

종로127

종로구

2007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터
Original site of the Joseon Langusge Society

조선어학회는 1921년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의 제자들이 한글의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발족한 조선어 연구회의 후신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한글학회로 이어졌다.

율곡로3길 74-15(화동130-1)

210

종로128

종로구

2005

조선일보 창간 사옥 터
朝鮮日報創刊 社屋址
Site of Office of Chosun Ilbo(Newspaper)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사 사옥 터. 조선일보는 3·1운동 이후 민족 자본으로 이곳에서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계천로 57(관철동 43-11)

211

종로129

종로구

1987

조지서 터
造紙署址
Site of Jojiseo Office

조지서는 국가에서 사용하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으로 1415년(태종 15) 조지소(造紙所)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1466년(세조 12) 조지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국가문서에 쓰이는 표전지(表箋紙), 지폐 용지인 저화지(楮貨紙)와 기타 서적 제작용 종이를 생산하였다.

세검정로 267(신영동 199-3)

212

종로130

종로구

1998

종침교 터
琮琛橋址

조선조 성종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과 허침(許琛)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터

사직로8길 39(내자동 223)

213

종로131

종로구

1995

좌포도청 터
左捕盜廳址

조선시대 정선방(貞善坊)에 있던 죄인을 다스리던 관청 터

돈화문로26(묘동59-8, 56)

214

종로132

종로구

2001

죽동궁 터
竹洞宮址
Site of Jukdonggung Palace

죽동궁은 순조의 장녀 명온공주와 그 남편 김현근이 거주하던 곳이다. 이곳은 당시 김현근이 앓고 있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들이 대나무 칼춤을 추며 병이 낫기를 기원했다고 해서 죽도궁(竹刀宮)으로 불리다가, 후에 죽동궁이 되었다. 고종 때에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살기도 하였다.
Site of Jukdonggung Palace
Jukdonggung was the palace where Princess Myeongon, the eldest daughter of Sunjo, the 23rd king of the Joseon Dynasty, and her husband Kim Heyongeun lived.

인사동5길 38(관훈동 198-42)

215

종로133

종로구

2001

준천사 터
濬川司址
Site of Juncheonsa Government Office

준천사는 도성 안 개천을 준설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1760년(영조 36) 설치되었다가 1894년(고종 31) 준천 업무를 한성부에 이관하면서 폐지되었다. 준천사가 있던 동네를 준천사동이라 했는데 1914년 관수동으로 바뀌었다.

돈화문로 1(관수동 91-1)

216

종로134

종로구

1989

중부학당 터
中部學堂址
Site of the Central District School

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의 중부·동부·서부·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다. 북부 관광방(觀光坊)이었던 이곳에 중부학당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종로1길 50(중학동 19)

217

종로135

종로구

1988

지석영 집터
池錫永家址

종두법 보급과 서양 의학 도입, 국문(國文)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지석영(池錫永, 1855~1935)의 집터.

삼일대로 444(낙원동2)

218

종로136

종로구

1995

지청천 장군 집터
池靑天將軍家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항일 독립투사 지청천장군의 집 터

삼청로 124-1(삼청동 37)

219

종로137

종로구

1995

진단학회 창립터
震檀學會創立址

한국역사 및 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1934년 5월 7일 창립한 진단학회 사무소가 1936년 초 성북동으로 옮겨갈때까지 있던 자리.

가회동 218(도로명 주소 없음)

220

종로138

종로구

1999

창의궁 터
彰義宮址
Site of Changuigung House

창의궁은 조선 21대 임금 영조(1694~1776)가 왕자 시절에 살던 집이다. 영조 즉위 후 왕실 사당 등으로 쓰였다. 191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효자로19(통의동 35-23)

221

종로139

종로구

1990

척화비 있던 곳
斥和碑

19세기 후반 고종의 생부(生父)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서양인의 조선침투를 방어 격퇴시켰다는 의미로 전국 주요지역에 세웠는 바 그중의 한 척화비가 있었던 곳.

종로2가 84-11(도로명주소 없음)

222

종로140

종로구

1998

청송당 터
聽松堂址

조선시대 조광조(趙光祖)의 제자로 대학자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이 두문불출하면서 공부했던 독서당 터

자하문로 136(청운동 89-3)

223

종로141

종로구

2002

총융청 터
摠戎廳址
Site of Chongyungcheong Military Encampment

총융청은 인조2년(1624)에 설치된 조선시대의 중앙 군영(軍營)이다. 광주(廣州)·양주(楊州)·수원(水原) 등 경기도 지역의 군사 일을 맡았으며, 영조 23년(1747)에는 북한산성(北漢山城)의 수비를 맡기도 했다. 고종21년(1884)에 폐지되었다.

세검정로9길 1(신영동 219-4)

224

종로142

종로구

1997

최시형 순교 터
崔時亨殉敎址

동학 제2세 교조 해월 최시형이 동학혁명을 지도하다가 순교(1898)한 터

돈화문로 26(묘동 59-8, 56)

225

종로143

종로구

2002

충훈부 터
忠勳府址
Site of Chunghunbu Office

충훈부는 국가에 공훈이 있는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공적을 보존하는 일을 맡아보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처음에는 공신도감, 충훈사로 부르던 것을 1459년 세조 때 충훈부로 고쳤다. 6·25전쟁 때 대부분 파손되었으며, 1953년 보신각을 복원할 때 그 기와 일부를 사용하였다.

인사동길 62(관훈동 130-3)

226

종로144

종로구

2001

취운정 터
翠雲亭址
Site of Chwiunjeong Pavillion

취운정은 1870년대 중반 민태호(閔台鎬, 1834~1884)가 지은 정자이다.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이곳에 유폐되어 『서유견문』을 집필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회합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북촌로112 (삼청동 25-23)

227

종로145

종로구

2002

탕춘대 터
蕩春臺址
Site of Tangchundae

탕춘대는 1506년 연산군이 세운 누대(樓臺)이다. 연산군은 경치가 좋은 이곳 일대를 연회장소로 삼고 시냇물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위에 탕춘대를 지었다. 영조 때에는 이 일대에서 무사들을 선발하여 훈련시켰다고 하여 연융대(鍊戎臺)라 부르기도 하였다.

신영동 136-9(도로명주소 없음)

228

종로146

종로구

2001

통례원 터
通禮院址
Site of Tongnyewon Government Office

통례원은 조선시대에 조정의 의례와 하례, 제사와 의식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각문(閣門)이라 하였다가 1466년(세조 12) 통례원으로 바뀌었으며 1895년(고종 32) 장례원(掌禮院)으로 바뀌었다.

돈화문로 93(와룡동 139)

229

종로147

종로구

1994

평창 터
平倉址

조선후기 서울 북쪽의 방어를 위한 총융청(摠戎廳)의 군량창고가 있던 곳

평창11길 9-1(평창동 329-2)

230

종로148

종로구

2011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韓國 天主敎會創立址

1784(정조 8년) 겨울, 수표교 부근 이벽(李檗, 1754~1785)의 집이던 이곳이 세례식이 최초로 거행되어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터이다. 

청계천로 105(관수동152-1)

231

종로149

종로구

2019

한남서림 터
翰南書林址
The site of Hannamseorim(bookstoore)

한남서림은 고서적 전문서점으로 1910년경 문을 열었으며
 1936년 전형필에게 인수되었다. 전형필은 한남서림을
거점으로 삼아 국외로 유출될 위기에 놓인 많은 민족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관훈동 18번지

232

종로150

종로구

2001

한성도서주식회사 터
漢城圖書株式會社址
Site of Hanseong Publishing Company

한성도서주식회사(대표이사: 이봉하, 이사: 이종준, 한규상, 박태련, 장도빈)는 민족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한 출판사로서 1920년 창설되어 1957년까지 존속하였다. 주요 출판물로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 심훈의 『상록수』 등이 있다.

우정국로 65(견지동 30)

233

종로151

종로구

1998

한성부 동부관아 터
漢城府東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동쪽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창경궁로 106(인의동 48-26)

234

종로152

종로구

1998

한성부 북부관아 터
漢城府北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북쪽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삼청로 20-1(사간동 70)

235

종로153

종로구

1998

한성부 중부관아 터
漢城府中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중부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종로 154-1(종로3가 171)

236

종로154

종로구

2003

한성전보총국 터
漢城電報總局址
Site of Hanseong Telegram Service

이 곳은 조선 고종 22년(1885년) 조청전선조약(朝淸電線條約)을 체결한 후 조선과 청과의 사이를 연결한 서로전선(西路電線)을 운영하기 위해서 세운 한성전보총국이 있었던 자리이다.

세종대로 175(세종로동 81-3)

237

종로155

종로구

2006

한양의원 터
漢陽醫院址
Hangyang Infirmary Site

우리나라 근대 초창기의 양의로 한성의사회 회장과 조선의사협회 초대 간사장을 역임한 박계양(朴啓陽)이 운영하던 병원터. 홍명희, 정인보, 최남선과 같은 명사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수표교로 118 (낙원동 146)

238

종로156

종로구

2001

현진건 집터
玄鎭健家址
 Former Site of Hyeon jin-geon's House

현진건(1900-1943)은 근대 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자전적 소설과 민족적 현실 및 하층민에 대한 소설, 역사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암동 325-2(도로명주소 없음)

239

종로157

종로구

1998

혜정교 터
惠政橋址

중학천(中學川) 위에 놓였던 다리로 복청교(福淸橋)라고도 하며,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기도 하였음

종로1 (종로1가1)

240

종로158

종로구

2000

화기도감 터
火器都監址

조선시대에 총포를 만들었던 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총(鳥銃)을 사용하여 아군이 크게 고전하였으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조총청(鳥銃廳)을 만들어 총포를 제작하였고, 그 후 북쪽의 여진(女眞)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총청을 화기도감으로 개편하였다.

북촌로5길 48(화동 2)

241

종로159

종로구

2005

황성신문 터
皇城新聞址
Site of the Office of Hwangseong Sinmun(Newspaper)

황성신문은 1898년 남궁억 등이 창간한 국한문 혼용의 애국계몽 일간지로서 국권을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장지연이'시일야방성대곡'이란 통분 논설을 게재하였다가 정간 당하였다.

청계천로41(서린동33)

242

종로160

종로구

1992

훈련도감 터
訓鍊都監址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의 삼수병(三手兵)을 관할하던 군영 터

새문안로 75(신문로1가 57)

243

종로161

종로구

2005

흥덕사 터
興德寺址
Site of Heungdeoksa(Temple)

이 부근은 조선 태조가 태종1년(1401년)에 옛집 일대를 희사해서 흥덕사를 창건한 곳이다. 그 후 세종때 불교를 선교(禪敎) 두 종파로 통폐합 할 때 교종의 도회소가 되는 등 불교사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연산군 때 폐사된 후 흔적조차 없어졌다.

성균관로17길 18(명륜동1가 2-13)

244

종로162

종로구

1988

흥화문 터
興化門址

경희궁(慶熙宮) 정문인 흥화문의 원래 자리

새문안로 69(신문로1가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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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